세상에 참 다양한 모양의 파스타가 있는데 그 파스타 종류 이름만 다 알아도 이탈리아 단어 500개 정도는 그냥 알 수 있을 것 같다. 하긴 뭐 무슨 모양이든 만들어서 이름 붙이면 그게 곧 그냥 파스타가 되는 것 같기도 하다. 신발 주걱 모양 파스타도 빨래집게 모양 파스타도 지금 이 순간 어딘가에서 누가 만들고 있을 것만 같다. 가끔 파스타 만드는 영상을 찾아보는데 요리 메뉴로서의 파스타 말고 그냥 요리사든 할머니든 누구든 밀가루 반죽해서 밀고 굴리고 누르고 굳이 구부리고 집고 자르고 해서 여러 가지 형태의 파스타 면을 만드는 영상들이다. 이 뻥튀기 같은 파스타의 이름은 Busiate 란다. 길게 자른 파스타를 대바늘 같은 꼬챙이 위에 놓고 굴리고 감아서 쭉 빼면 저렇게 되는데 시칠리아의 트라파니라는 지역에서 특정 뜨개질 바늘을 busa라고 한다고. 이 이름이 입에 잘 안 붙었는데 항상 부온시테 부온시타 이러다 보면 부시아테라고 생각이 났다.
원래 이걸 그냥 삶아서 간단하게 바질 페스토에 비벼 먹으려고 했는데 바질 페스토라고 얼마간 굳게 믿고 있었던 작은 병을 꺼내보니 올리브 타프나드였다. 바질 페스토는 정말 그냥 면이랑만 섞어도 맛있지만 타프나드는 특히 검은 올리브가 아닌 그린 올리브라면 또 호불호가 갈려서 이 맛을 숨겨줄 뭔가 다른 재료가 필요하단 생각에 이것저것 파스타와 비슷한 길쭉한 것들을 꺼냈다.
파스타 물을 끓일 때 이 놈이 언제 끓나 하고 앞에 서서 벼르고 있으면 끓는점이 마치 500도 정도는 되는 것처럼 정말 늦게 끓는다. 마치 작동 중인 프린터 앞에 간절하게 내민 손이 민망하게 꼭 이때다 하고 종이가 걸리거나 종이가 다 떨어져 있거나 잉크가 없거나 하는 것처럼. 하지만 완전히 잊고 있을 때는 아 좀 더 오래 끓어주면 좋겠다 싶을 만큼 금방 끓어오른다. 참으로 신기하다.
예전에 이탈리아 할머니가 나오는 파스타 요리 영상을 봤는데 자는 할머니를 깨워서 갑자기 파스타 반죽을 하라고 해도 헤어캡을 쓰고 꽃무늬 원피스 잠옷을 입은 채로 눈감고 뚝딱 할 수 있을 것 같이 파스타 반죽에 완벽히 적합한 부엌이 나왔다. 부엌의 절반을 차지하는 커다란 나무 도마에서 후다닥 반죽을 해선 속이 들여다 보이지도 않는 커다랗고 깊은 냄비에 갑자기 채 썬 감자를 집어넣고 흐물흐물한 수제 파스타를 휘휘 넣었다. 그리고는 막간을 이용하여 손수 뜯은 바질에 올리브기름을 넣어 방망이로 뭉개고 으깨고 해서 바질 페스토를 만들던데 너무 맛있어 보였다. 사실 감자에 파스타라니 너무 이상하나 감자 들어간 만두나 감자떡 같은 음식을 생각하면 감자와 파스타도 이탈리아인의 밥상처럼 적당히 토속적이라 솔깃했다. 이걸 이탈리아 할머니가 이렇게 만들더라는 말을 연신 내뱉으며 뭉그러지는 재료들을 합리화하는 나에게 파스타를 먹은 아이 왈 '엄마는 할머니가 아닌데 왜 할머니 파스타를 만들었어?' 즉슨 맛없다는 말. 저 파스타는 정말 인생 최장 시간 삶았던 익히기 너무 힘든 파스타였고 감자는 '감자 넣는 걸 깜빡했네'라고 말하는 순간에 넣었어야 아마 적당히 익었을 거다.
'Daily'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빌니우스의 테이글라흐 (5) | 2023.06.01 |
---|---|
부활절 지나고 먹은 파스타 회상 (5) | 2023.05.06 |
도서관에서 차 한 잔 (3) | 2023.03.27 |
스탠리 투치의 책 (1) | 2023.01.23 |
12월의 무라카미 류 (4) | 2023.01.10 |
지난 12월의 차 24잔. (1) | 2023.01.07 |
여름, Vasara, Лето (2) | 2022.09.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