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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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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투아니아어 140_구유 Prakartėlė , 1월의 연극 '아기 예수의 탄생' 가톨릭 국가인 리투아니아에서는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대성당 광장과 성당 내부에 프라카르텔레 Prakartėlė라고 불리는 세트 형식의 조형물이 등장한다. 야외의 공공장소에서는 비교적 크게 만들어지지만 실내 어디에 놓이느냐에 따라 크기는 천차만별이며 선반 위에 놓을 수 있을 정도의 미니어처 모형이 되기도 한다. 기독교 신자가 아니어도 옛날이야기라고 생각하며 읽으면 성경이 재밌는 것과 마찬가지로 개인적으로 이 프라카르텔레를 볼 때에도 신성한 기분이 든다기보다는 묘하게 귀엽고 또 어떤 컨셉으로 꾸미고 바뀔까하는 호기심도 생긴다. 이 단어는 '둘러싸다', '울타리를 치다'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의 Praesaepe에 해당한다. 넓게보면 '가축을 가둬두기 위한 우리', '마구간'을 뜻하며 보금자리나 은신처를..
Oslo, August 31st (2011) , 우리나라에선 로 잘 알려진 요아킴 트리에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이다. 데뷔작인 부터 , 까지를 이 감독의 '오슬로 3부작'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배우 레나테 레이스뵈가 오슬로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을 통해 크게 알려지고 상도 받고, 특히 한국어 제목의 유쾌하고 당돌한 어감 때문에 30대 여성 줄리가 좌충우돌하는 생동감 있는 영화의 인상이 생겨버렸지만 사실 내게 이 영화는 줄리의 상대역이었던 '악셀(Anders Danielsen Lie) 3부작'의 완결 편에 더 가까웠다. 그렇게 보면 도 사실 슬픈 영화이다. 그리고 3부작을 관통하는 에 가장 마음이 간다. 사실 제목에 날짜가 들어가는 영화의 전형적인 인상이 있다. 무슨 시위가 일어났다거나 중대한 선언이 있었을 것 같고 지구 최후의 날 뭐 이런 영..
Bashu,the Little Stranger (1986) https://ashland.tistory.com/559051 가 끝나고 제작진 이름이 차례로 나오는데 '편집-바흐람 베이자이' 한 줄이 눈에 들어왔다. 순전히 감독 아미르 나데리보다 더 많이 들어본 이름이라는 이유만으로 어쩌면 이 세련되고 독특한 1984년 영화의 완성도는 이분 때문이지 않을까 넘겨 집게 만든 감독, 바흐람 베이자이의 영화 를 연이어 봤다. 바흐람 베이자이 감독은 작년 12월 자신의 87번째 생일에 세상을 떠났다. 제목에서부터 '이것은 바슈라는 아이의 이야기입니다'라고 친절하게 알려주는 영화. 하지만 인정사정없는 폭격장면으로 시작된다. 너라도 살아남아야 한다는 마지막 한마디조차 내뱉지 못한 바슈의 부모는 그의 눈앞에서 순식간에 사라지고 공포에 질린 아이는 누군가의 트럭에 가까스..
Daddy Longlegs (2009) 2025년은 늘 함께 영화를 만들던 사프디 형제가 드디어 각자 새 영화로 돌아온 해. 이후 바로 후속작이 나올 줄 알았는데 상당히 천천히 돌아왔다. 조쉬 사프디의 은 아직 못 봤고 베니 사프디의 만 우선 봤다. 형 조쉬 사프디가 만든 은 사프디 형제 영화의 시나리오에 늘 참여했던 로널드 브론스타인이 여전히 함께 각본에 이름을 올렸다. 공동 각본이라고 하면 사실 늘 드는 의문은 어느 정도 동등하게 기여해야 공동이라고 하는 걸까. 네가 먼저 반 쓰면 내가 반쓸게 하고 서명하는 것은 절대 아닐 테고 이것은 정말 함께 만들어간다는 끈끈한 신뢰 없이는 안될 것 같다. 그래서 사실 베니 사프디 단독 각본의 보다는 로널드 브론스타인이 참여한 에 이전의 사프디 형제 스타일이 더 남아있지 않을까 해서 좀 더 기대..
Speak No Evil (2022) 추천받은 덴마크 영화 을 재밌게 봤다. 2026년은 그렇게 처참한 풍자극으로 시작했다. 이탈리아 토스카나에서 알게 된 네덜란드 부부와 덴마크 부부가 다시 만나면서 벌어지는 일. 대충 내용을 듣고 봐서 보는 내내 잔혹한 결말을 예상하며 마음의 준비를 하긴 했지만 결국 결말에 다다랐을 때의 공포는 전혀 새로운 것이었다. 영화 초반부터 가장 신기했던 것은 덴마크 부부가 선택한 여행의 방식이었다. 이들은 아마도 이탈리아 가정식 한두 끼가 포함된 토스카나의 리조트 패키지 상품을 산 것 같다. 이탈리아 문화도 자연스레 접하고 친구도 사귀고 뭐 그러고 싶었나 보다. 그런데 외국까지 가족여행을 가서 모르는 사람들이랑 자발적으로 스몰토크를 하며 아침 먹고 싶을까. 내 개인 성향 탓이겠지만 이 부분부터 이미 이들이 자..
지구를 지켜라! (2003) 와 부고니아 (2025) 크리스마스 연휴에 본 따끈따끈한 , 오래간만에 국뽕의 기회를 선사함. 지금까지 제시 플레먼스에게 가지고 있었던 모종의 낯섦이 사라졌고, https://ashland.tistory.com/328 적 감성을 잊지 못하는 나같은 사람들에게 요르고스 란티모스가 필요 이상으로 애쓰지 않는 연출로 다시 되돌아온 것 같아서 기뻤고, 엠마 스톤의 역할도 연기도 크게 튀지 않아서 좋았다. 영화 는 장준환 감독의 의 리메이크작이다. 아리애스터가 제작에 참여했고 요르고스 란티모스가 연출했다. 한국어 제목에서 저 느낌표만 덜어냈더라면 만 명 정도는 더 봤을 것 같고, 포스터 속 신하균의 머리에서 헬맷만 벗겨냈더라면 또 만 명은 더 봤을지도 모를, 하지만 손익분기점을 생각하지 않으면 그런대로 성공한 영화가 아닐까 하는,..
리투아니아어 139_ 내년 Kitais metais 내년에도 나에게 365일이라는 행운이 주어진다면1번 정도는 바르샤바에 가고,2번 정도는 재밌는 책을 읽고,3번 정도는 연극을 보러 가고4번 정도는 생일케이크를 만들고,5번 정도는 좋아하는 영화에 대해 생각하고,6번 정도는 날씨가 좋다고 느끼고 싶다. 하지만 만약 모든 것이 0에 머무른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것에 그러려니 안도하며 각각의 어떤 숫자에 안착했던 순간을 회상하고 싶다.
12월에 회상하는 2025년 11월의 연극 '아들 Sūnus' 11월에 연극을 보는 것은 대략 이런 느낌이다. 이미 어둠이 내려앉은 수많은 거리를 지나 극장으로 향하고, 가까스로 암전 된 무대를 마주하고, 공연이 끝난 후 하나둘 밖으로 밀려 나온 관객들의 짙은 코트 빛깔이 밤의 빈틈을 차근차근 채워갈 때, 극장을 들어서기 전의 모습과 보고 나온 후의 풍경은 그 시간 차이에도 불구하고 큰 변화 없이 묘하게 압축되어 정체된다. 그것은 마치 연극을 보지 않은 상태와 이미 보고 나온 상태 사이엔 결국 아무런 차이도 없다고 말하는 것 같다. 마치 해결되지 않는 수수께끼의 결정적인 단서가 될 것 같아 빨리 감기로 되돌려보지만 결과적으로 아무런 해답을 주지 않는 의미 없는 장면에서 멈추는 것처럼 극적이지 않고, 의미심장한 장면 몇 개를 삭제하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듯 조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