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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09.14 사냥의 시간 (2020)
  2. 2020.05.12 어떤 영화들 1
  3. 2020.04.20 Midsommar (2019)
  4. 2020.03.16 Graduation (2016)
  5. 2020.03.14 Men and chicken (2015)
Film2020. 9. 14. 06:00

 

 

 

 

사냥의 시간_윤성현_2020

 

 

기생충뽕에 온 한국이 휘청거릴무렵 보란듯이 국제영화제빨을 세우며 나타난 영화. 비록 굳이 그때 바이러스가 세상을 휘저어놓는 바람에 상대적으로 조명을 못받아 안타깝군 하는 생각도 들지만 아 오히려 그래서 너무 다행이다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망작이라고 말하고 싶다가도 또 되려 미안하고 안타깝고 복잡한 마음이 드는 아쉬운 영화이다.

마치 혜성처럼 나타나서 올림픽 금메달을 딴 선수가 다음 올림픽 예선 1차전에서 탈락할때의 느낌처럼 허무했다. 그 금메달은 역시 우연이었어 라고 말하는 무심한 사람들에게 분명 무슨 사정이 있을거라고 이야기해주고 싶은 기분이다.

 

감독의 전작인 파수꾼 (https://ashland11.com/69) 은 정말 멋진 영화였는데. 10년이라는 세월이 훌쩍 흘러 영화 속에서 교복을 입고 있던 소년들이 수트를 입고 있는 영화제 풍경을 봤을땐 뭔가 기특한 기분도 들었다. 당시의 배우들은 유명해졌다. 그들 대부분이 모여 다시 영화를 찍는다고 했을때엔 감독의 마이너 감성이 잘 살아난 파수꾼의 뒤를 이을 영화가 만들어졌기를 기대했다. 김기덕의 악어와 류승완의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양익준의 똥파리를 보고 그들의 다음 작품을 기대했던 것처럼. 

 

이 영화의 제작 내막에 대해서는 모른다. 하지만 재능있던 감독이 원했던건 왠지 이런게 아니었을거란 느낌이 들었다. 마치 꿀떨어지는 눈빛으로 감독만 바라보던 제작사가 중간에 부도가 나서 급히 새 제작사를 찾은 것처럼. 마치 뭘 잘 모르는 투자자들이 감내놔라 배내놔라 했던것처럼. 공각기동대처럼 약간 어둡고 절망적인 시대로 가요. 황해같은 분위기도 좀 집어넣어야 하지 않을까요. 친구들 이야기니깐 친구 오마쥬하는셈치고 이번 기회에 진짜 주인공을 하와이로 보내버립시다. 마치 지난 10년간의 한국의 모든 조폭 범죄 영화들의 결정판을 만들어보자라는 포부를 바탕으로 한 갖가지 생각들을 식당 주인이 곧 들이닥칠 손님들을 생각하며 부랴부랴 다 때려넣고 끓인 부대찌개처럼. 이것이 과연 파수꾼을 만든 감독의 의도대로 그의 역량으로 만들어 진 것인지 의구심이 들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파수꾼이 뿜어내던 그 기분 나쁜 긴장감은 이 영화에서도 여전했다. 청년이 되어서도 여전히 갈피를 못잡고 방황하는 그 때 그 소년들의 삶을 지켜보는 것은 또 괴로울 정도로 먹먹했다. 이것은 어쩌면 파수꾼에서 기태를 지켜주지 못한 그의 친구들과 그의 아버지가 뒤늦게나마 한없이 무심했고 성숙하지 못했던 그들이 잃었던 것을 기억해내고 기태에게 용서를 빌고 그를 살려내고자 했던 영화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역설적으로 결국 기태만이 홀로 남는다. 제일 강한 척 했지만 남모를 결핍 속에서 외롭게 죽어갔던 그를 이번엔 홀로 남겨두지 않는다. 어처구니없이 인위적이고 농담같았던 하와이씬은 이미 죽고 없는 기태가 결국 천국에서 제 모든 친구들을 기다렸다는 느낌으로 그냥 받아들였다. 결국 파수꾼을 기억하는 사람들을 위한 영화라고 생각하면 이런 영화를 만들어 준것이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결국 이 영화도 기억할거다. 

 

특히 10년이 지나서도 그대로인듯한 이제훈과 박정민의 얼굴과 표정을 보고 있자니 이제 꽤 그럴듯한 상업영화를 찍는 그들이 어릴 적 온 마음을 담아 찍어냈던 독립 영화를 마음껏 추억하며 연기를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더 아련했다. 특히 백희와 의뭉스런 눈빛을 주고받다 기태에게 끌려갔던 배제기라는 배우도 참 인상적이었는데 이번에도 박정민에게 빨리 튀라는 의미있는 눈짓을 하며 짧게 등장해서 반가웠다. 이 배우는 킹덤에서도 진짜 리얼하게 사람을 뜯어먹는 좀비 연기를 보여줬는데 시간이 좀 더 지나서 지명도가 더 높아지면 아마 파수꾼은 대배우들이 소싯적에 출연한 희귀작으로 남겠지. 물론 순전히 그랬으면 하는 내 생각.  

영화의 엔딩곡으로 쓰여진 론이라는 가수가 부른 프라이머리의 '스쳐가'. 3월부터 6월까지 내 유튜브 조회수를 뽑아본다면 아마 톱을 차지할 노래. 그냥 우연히 듣게 된거라도 이 노래를 이만큼 좋아할 수 있었을까. 이 영화의 엔딩을 매우 여러번 보았다. 아 이 영화는 정말 이렇게 끝나는 건가 아쉽고 쓸쓸한 마음으로 올라가는 크레딧을 쳐다보는 와중에 바로 이어지는 이 노래이 시작이 너무 좋았기때문이다. 특정 앨범을 듣고 또 들어 본 사람들이라면 알거다. 어떤 노래가 너무 좋으면 그냥 그 노래를 바로 재생시켜서 들을수도 있지만 그 이전 수록곡이 끝난 후 귓속에 흐르는 정적과 그 노래가 시작되는 그 찰나의 순간에만 느낄 수 있는 이미 가슴을 후벼파고드는 오묘한 감동을 말이다. 그 인트로에 그 소년들이 살아낸 짧고 어둡고 갑갑했던 삶이 전부 녹아있다. 이곡이 영화를 살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노래를 들을때마다 여전히 그들의 이야기와 표정이 휙휙 스쳐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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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2020. 5. 12. 06:00

 

 

To Rome with love_Woody allen (2012)

 

 

(하루가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하루를 끝냈다고 생각하며 차 한 잔과 함께 보는 소중한 영화 한 편. 보는 중엔 영원히 기억할 것 같은데 제목도 까먹고 내용도 까먹고 결정적으로 재밌게 본 기억을 잊는 것이 서운해서 우선 짧게라도 기록하고 꼬리를 물고 떠오르는 일련의 영화들도 묶어서 기록해두기로 했다. 그러다 보면 결국은 내가 본 영화들을 다 기록해놓을 수 있지 않으려나?)

 

코로나로 집안에 격리된 이탈리아 사람들이 발코니에 나와서 저마다의 아리아를 열창하는 영상을 보고 오래 전의 이 영화가 떠올랐다. 평범하고 심심해보이기에는 이미 너무 유명해지고 바빠진 로마라는 도시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들. 어떤 이의 삶도 그렇겠지. 너무나 평범했는데 소위 그렇게 재능을 썩히고 살기에는 너무나 비범하다는 논리로 결국 아주 바빠지고 유명해지는. 이 영화에 등장하는 에피소드 4개 중 감독 우디 알렌 본인이 등장하는 에피소드가 속보이게 제일 재밌음. 우디 알렌의 영화 중에 속보이지 않는 영화가 어디 있겠냐마는. 여행 중에 이탈리아 남자와 사랑에 빠진 딸이 결혼을 한다고 해서 상견례를 하려고 로마에 도착한 우디 알렌이 집안을 돌아다니다 파바로티급의 성량의 노랫소리가 들려 따라가 보니 이탈리아인 사돈이 무려 욕실에서 샤워 커튼이 찢어져라 혼자 샤워를 하면서 부르고 있는 것. 유태인 우디 알렌은 이런 재능을 목욕탕에서 썩힐 수 없다며 업계에 아는 사람들이 많으니 반드시 세상에 알려야 한다고 호들갑을 떨고 미국인 사돈에게 등 떠밀려 결국 오디션을 보러 간 사돈은 웬걸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풀이 죽는다. 왜냐하면 그 실력은 혼자서 샤워를 할 때만 발휘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생각해 낸 것은 무엇일까. 왜 사람들은 그를 무림의 고수로 남겨두지 않는 걸까. 왜 사돈 양반은 자신의 욕실을 벗어난 것일까. 척박한 상상력을 지닌 나로써는 그 장면을 보고 정말 한참을 박장대소했다. 얇은 대나무 가지 위에서 중심을 잡으려고 애쓰는 장쯔이를 앞에 두고 뒷짐을 쥐고 그녀를 응시하는 주윤발의 온화한 미소가 생각난 것은 물론이다.  

 

 

 

Everybody know_Asghar Farhadi  (2018)

 

 

 

To Rome with love 에 콜걸로 등장했던 페넬로페 크루즈를 떠올리다 생각난 영화. 페넬로페 크루즈와 하비에르 바르뎀 부부가 또 함께 나오는 스페인 영화. 이 둘이 사실상 너무 잘 어울려서 영화 속에서 결코 이루어지지 않는 커플로서의 모습 조차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페인의 마을 정경, 가정집 인테리어부터 시작해서 결혼식 풍경까지 자연스럽고 발랄하게 그려진다. 그걸 보는 게 사실 가장 재밌었다. 그런데 결혼식의 흥분은 정전과 동시에 가라앉는다. 폭우가 내리고 어두컴컴한 가운데에서도 그 흥을 이어가고 싶은 사람들은 발전기를 실어와서 전기를 돌린다.

어떤 사람들은 그야말로 자신에게 주어진 그 하루, 사실 하루도 너무 길다. 그 순간을 즐겁게 사는 것을 인생의 최대 목표로 삼은 것처럼 아무것도 잃을 것이 없다는 듯 자유롭다. 그들은 어찌 내가 손을 휘젓고 발끝을 디디고 서 있는 이 순간이 불행하다고 생각할 수 있느냐고 되묻는 것 같다. 그것은 분명 자기 생에 대한 자존감과 연결되는 문제일 것이다.

우리는 열심히 살면 인생이 200도 되고 300도 된다고 생각하며 태만해지는 일분 일초를 붙들지 못해 안달하지만 사실 인생은 결국은 그 자체로 100이고 그것은 그 삶 속에서 잃고 망가지는 모든 것을 포함해서도 최종적으로 100 이므로 잃어버릴 법한 30을 위해 아무리 애를 써봤자 인생은 결코 130이 되진 않을 것이라고 그 사람들은 뭔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런 생각엔 용기가 필요하다. 얻을 법한 것들로부터도 잃을 법한 것들로부터도 자유로워지는 것. 두 팔을 벌리고 제발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달라고 애걸복걸하는 삶을 있는 그대로 끌어안는 용기. 물론 그런 느슨한 사고방식은 위기상황에서는 감당할 수 없는 많은 생채기를 남기겠지만 과연 세상의 어떤 위험과 굴곡으로부터 우리가 절대적으로 안전할 수 있을까.

 

 

 

 

 

An unexpected love_Juan vera (2018)

 

 

 

Everybody's knows 에서 페넬로페 크루즈의 남편으로 나왔던 리카르도 다린이라는 배우가 나오는 영화. 사실 이 배우가 나오는 로베르토의 특별한 일주일이라는 아르헨티나 영화 (https://ashland11.com/700)를 관객미소로 흐뭇하게 봤던 터라 그냥 믿고 봤다. 내가 본 두 편의 정확한 아르헨티나 영화에 모두 등장했으니 아마도 아르헨티나 국민배우인 걸로. 약간 이재룡과 뱅상 카셀을 섞어놓은 듯한 얼굴이다. 대학에 입학한 외아들을 독립시키고 집안에 홀로 남은 중년 부부가 소파의 가장자리에 멀찌감치 떨어져 앉아있다. 우리는 과연 사랑에 빠져있을까? 응. 널 사랑해. 아니 내 말은 나와 사랑에 빠졌냐고 라는 대화로부터 영화는 시작된다.

지상의 모든 부부들에게 사랑하는 것과 서로 사랑에 빠져있는 것과의 차이를 아느냐고 묻고 그렇지 못한 관계의 불완전함을 씁쓸하게 인지시키고 난 모르오 그것은 이미 이번 생애의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입니다 하고 오리발 내미는 권태기 부부들의 관계 합리화에 폐부를 찌르려고 마구 애쓰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고리타분한 선생님들이 맨날 했던 말이 작심삼일을 반복해라 였는데 사랑에 빠지는 것도 한 사람과 계속 반복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순진한 바람에 근거한 솔직한 질문을 던지고 결별이라는 결론에 직면하는 것을 두려워하거나 회피하지 않고 정면 돌파하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 

 

 

 

The Commune_ Thomas Vinterberg (2016)

 

 

매즈 미켈슨의 헌터 (https://ashland11.com/793)를 연출한 토마스 빈터베르그의 또 다른 영화. 사실 여주인공 덴마크 여배우가 An expected love의 아르헨티나 여배우와 얼굴도 연기 분위기도 너무나 묘하게 닮았고 비슷한 연령대에서 위기를 겪는 부부라는 설정도 같아서 자연스레 연결되었다.

부모로부터 큰 집을 물려 받은 부부가 비싼 집세도 함께 분담하고 여러 사람들과 북적되며 재밌게 살고자 마음 맞는 사람들을 모아서 작은 공동체를 이루어 살아가는 이야기. 개인과 집단. 떼려야 뗄 수 없고 상호보완적인 것만 같지만 개인에게 가장 큰 생채기를 남기는 것도 집단이며 이상적인 공동체를 늘 꿈꿔야 하는 것 그 자체로 이 공동체의 생리라는 것이 얼마나 조악하고 불완전한 것인지 이 감독이 끈질기게 말하고 싶어 하는 주제 같다. 그래서 이 손바닥만 한 집단 속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화합의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공동체 생활의 장단점 같은 것이 날카롭게 그려질 줄 알았는데 약간 부부간의 갈등에 초점이 맞추어지면서 혹은 나라면 어땠을까의 심정으로 감상적으로 집중하는 바람에 영화 자체의 몰입도는 약간 헐거워진 느낌이다.

애초에 아내와의 결혼 생활에 별 문제를 느끼지 못했던 남자는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살며 생활을 풍성하게 만들고 싶어하고 그런 생활 속에서 확실히 더 행복해 보이고 빛나 보이는 아내를 보며 소외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자신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여기는 배우자에 대한 아쉬움과 무기력함도 작용했을 것이다. 사실 갈등의 원인에 대한 이런 서사는 다분히 남편의 입장에서 그려졌다. 그러다 그는 거침없이 구애를 해오는 제자와 사랑에 빠지고 남편이 결국 집을 나가 따로 살게 되자 아내는 이왕 이렇게 된 것 둘이 밖에서 살지 말고 같이 집에 들어와서 지내라는 제안을 하게 된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 모든 것을 포용하는 구성원의 쿨한 마인드로 아내는 초반에는 그 상황을 제법 영리하게 감내한다. 어쩌면 그녀는 개인적 불행을 초월해서 공동체적 이상을 구현하고자 스스로 총대를 맨 것인지도 모른다. 혹은 피해자로써의 자신의 처지를 상대적으로 부각시켜 구성원의 동의를 얻고 모든것을 처음으로 되돌리고 싶었던 것일 수도 있다. 처음에는 조금 껄끄러웠겠지만 제자와 남편은 의외로 자연스레 모두의 생활 속으로 흡수되고 다른 사람들도 한 가정의 해체를 동정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점차 자유로워지며 새로운 상황에 적응해 나간다.

하지만 여자는 결국 불행해진다. 그녀의 불안정한 감정상태는 다른 구성원들의 평화로운 생활을 방해하고 그녀는 오히려 자신이 의도한 그 공동체 속에서 고립되고 축출된다. 집단은 과연 궁지에 몰린 개인을 품어줄 수 있을까. 소위 사회의 안녕과 화합을 저해하는 요소로서 낙인찍힌 개인의 부재가 공동체의 속성을 더욱 공고히 해주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니 가장 궁금한 것은 집을 나간 이후의 여자의 삶이 아니라 여자가 집을 나간 이후 남은 사람들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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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2020. 4. 20. 06:00

 

 

 

 첫 해 리투아니아를 여행했을 때 얼떨결에 경험했던 하지 축제의 강렬함을 기억한다. 북구의 백야까지는 아니었지만 10시가 넘어도 대낮 같은 세상은 생경했고 아름다웠다. 들판의 야생꽃들을 꺾어서 화관을 만들고 하루 온종일 그것을 쓰고 다니다 해가 질 때까지 기다렸다 어스름해지면 작은 초를 켜서 화관 한가운데에 놓고 강에서 흘려보낸다.

어느 해의 하지 축제때는 장작을 높게 쌓아서 태우며 돌림노래 같은 전통 민요를 부르며 강강술래를 하듯 불 주위를 도는 행렬 속에 있었다. 불은 점점 거세지고 아래에 놓인 장작들은 점점 힘을 잃고 스러진다. 그것은 일 년 중 가장 긴 시간을 지상에 남아준 태양과의 작별인사와도 같았다. 강을 따라 밤새도록 노래를 부르며 걸었다. 그들이 부르는 노래의 의미를  알 순 없었지만 가슴이 시렸다. 1년에 딱 한 번 아주 오래전 이들 조상들이 누리고 숭배했던 원시적 자유를 회상하는 시간. 이들이 계속 지켜나가려는 풍습이자 기억이다. 

지금도 리투아니아에는 작은 공동체를 이루며 수공업을 일삼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전통 장날이나 고고학 축제 같은 행사에서 그들을 종종 만날 수 있다. 겉모습만으로도 그들은 도시 사람들과 확연히 차이가 난다. 기성복이 아닌 리넨 의상, 독특한 장신구들, 경계심 없는 표정. 자연을 곁에 두려는 인생관. 그것은 아름답다. 단 그것이 가장 옳고 아름다운 삶이라고 남에게 강요하지 않는다면. 스스로의 행복을 너무나 강렬하게 의식한 나머지 타인의 삶 속에서 불행만 인지하지 않는다면. 

기독교로의 개종이 늦었던 이교도였던 이 쪽 동네의 하지 풍습들을 알기에 사실 이 영화의 많은 요소들에 큰 거부감이나 이물감을 느끼진 못했다. 우상을 숭배하고 산 사람을 제물로 바치며 심지어 제물로 선택되었음을 발할라로 향하는 무임승차권으로 생각하고 영광으로 여기는 바이킹들의 삶 조차도 그런대로 납득이 갔었으니.

영화 속에서 90년마다 돌아오는 9일간의 이 하지 축제는 물론 그렇게 따사롭고 친절하지만은 않다. 멀쩡한 할머니 할아버지가 스스로 절벽 아래로 떨어져 생을 마감하는 어떤 기괴한 의식을 시작으로 그냥 환각 버섯이나 먹으며 놀려고 온 어린 이방인들은 충격에 빠진다. 하지만 아주 이상한 행위들도 대다수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을 보면 그럴듯하게 느껴져서 은근슬쩍 동화되며 위험한 호기심을 가지게 되고 내부의 엄격한 규칙과 교리들로 돌아가는 폐쇄적인 사회는 외부인들의 미심쩍은 시선을 느끼기 시작하면 폭력성을 드러내며 과격해진다. 

 

그렇다면 이제 이 공동체의 민낯을 알아차리고 벗어나려는 이들과 치부를 드러낸 사람들간의 쫓고 쫓는 싸움이 시작될까. 이들은 우여곡절 끝에 탈출에 성공하여 안도감을 느끼고 모든 것은 그저 한여름밤의 악몽으로 남을까

 

사실 72세가 되면 이번 생에서의 순환이 끝나 스스로 마감하는 삶은 한편으로는 그럴듯하지 않은가. 게다가 그런 말도 안 되는 상황들을 설정하고 강제하는 것도 그것을 믿고 따르는 것도 결국 인간이 아닌가. 우린 항상 뭔가를 믿고 있고 우리가 믿는 것이 전부이며 바람직하다 생각해야 하며 그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엔 용기가 필요하고 그 용기를 증명하기 위해 선택하는 삶조차 결국은 또 그런 믿음을 스스로와 타인에게 납득시키는 지루한 과정의 일부일뿐이다. 

 

그런데 만약에 아직 이 삶에 대한 강렬한 집착도 목표도 없고 내가 그 자체로 너무나 가치있으며 절대 없어서는 안 될 존재라고 말해주는 사람도 내 주변에 전혀 남아있지 않은 상태에서 그냥 그런 거 다 포기하고 우리랑 같이 초원에서 풀 뜯어서 끓인 차 마시고 예쁜 옷 만들어 입고 다 같이 잘 먹고 잘 살자라고 살갑게 말하며 접근하는 사람이 있다면 난 과연 이런 공동체에 내 삶을 능동적으로 맡길 수 있을까. 

 

자극적인 스토리와는 상관없이 보는 동안 눈은 즐거웠다. 어떤 의미에서는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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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2020. 3. 16. 07:00

 

Beyond the hills 을 보고 난 후 운좋게 바로 찾아서 볼 수 있었던 Cristian mungiu 의 2016년도 영화. 어떻게 읽어야할지 몰라서 그냥 영어로 쓴다. 뭉규? 멍쥬?. 크라이테리언 콜렉션이 편애하는 감독들이 확실히 있는것 같다. 이 영화도 발매되어있다.

사실 이 영화는 그로부터 4년 후에 만들어진 영화인데 오히려 마치 유명해지기 전 데뷔작처럼 훨씬 젊고 용감하고 거칠다. 무거운 주제를 초반에 휙 던져놓고 영화가 엄격하게 전개될 것이라 예상하게 하면서 막상 사건을 대하는 인물들의 미지근한 자세와 그들의 일상적이고도 개인적인 대화를 배치하는 이 감독 특유의 형식은 여전하다. 사람이 죽어서 응급실에 도착했는데 전화를 쓰려고 돌돌말린 충전기를 느긋하게 펴는 의사와 강간사건 이야기를 하면서 잎담배를 마는 경찰, 얼떨결에 살인을 한 수녀들을 태우고 경찰서를 향하는 자동차의 앞창을 뒤덮는 구정물처럼 리얼한 디테일들이 그렇다.

구멍난 상처를 기우고 또 기운 후에 더 이상 실로도 바늘로도 치유 불가능한 너덜너덜한 천조각이 되었을때에야 비로소 수면 위로 떠오르는 어떤 사회적 현안들. 그제서야 부랴부랴 대안을 찾고 혁신에 돌입하는 낡은 시스템. 그리고 그렇게 부글부글 끓어오르다 일순간 또 잠잠해지며 좋은게 좋은거라며 훈훈하게 끝나는 일일연속극 같은 세상에 대한 답답하고 안타까운 시선도 함께이다.

어쩌면 그것은 자국의 내부 문제로도 벅찬 작은 국가들이 좀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가려는 과정에서 흔히 직면하는 고충들을 최대한 객관적이고 냉정한 시선으로 세상에 보여주려는 예술가들이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자세인지도 모르겠다.


이런 동네의 영화를 흥미를 가지고 볼 수 있는 결정적인 이유는 이곳 리투아니아의 모습과 중첩되는 부분이 많아서이기도하다.

독립한지 30년이 지났고 유럽적 가치를 최우선시하지만 여전히 지울 수 없는 소련적 체취가 곳곳에 있다. 머리에 꽃무늬 수건을 두른 할머니와 마트 비닐 봉지를 손가방처럼 들고 다니는 할아버지, 세금 용지를 네등분으로 잘라 뒷면을 이면지로 활용하는 등의 절약이 몸에 밴 노년층과 대화의 절반을 리투아니아어화한 영어 단어로 채워쓰는 10대 사이에 분명히 채울수 없는 간극이 있다. 하지만 특정 과거가 정말 그렇게나 하찮고 빨리 지워버려야하는 치부이기만 한것인지 새로운 흐름에 대한 맹신이 오히려 모든것을 그르치고만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게된다.

이른 아침 갑자기 누군가가 내 창문을 향해 돌을 던진다면 우리는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단순히 아침부터 재수없다 라며 화가 날 수도 있을거고 평소에 뭔가 양심에 찔린 행동을 했거나 잘못한 것이 있다면 누군가의 해코지일지 몰라 불안에 휩싸일거다. 이러나 저러나 그것은 일종의 각성작용을 한다. 균열이 생긴 후에야 우리는 스스로를 되돌아보기 시작하고 최소한 그랬다면 아직은 희망이 있다는 소리다. 이 영화도 그렇게 시작된다. 그리고 영화가 끝날때까지 그것이 누구의 소행이었는지는 누가 이 주인공을 가만히 놔두지 않는것인지 알려주지 않는다. 사실 그것은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어쩌면 주인공 자신의 양심에 난 균열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것인지도 모른다.

공공 병원 의사인 주인공에겐 졸업 시험을 앞둔 외동딸이있다. 도서관 사서로 일하는 부인과는 각방을 쓰고 그 관계는 거의 단절된 상태이며 해체직전의 이 가정에서 부부의 유일한 대화주제는 딸의 미래이다. 그는 딸을 등교시키고는 애인의 집으로 가서 밀회를 즐긴다. 영국의 명문대로부터 입학 허가를 받은 딸에게 졸업 시험 성적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시험 성적으로 취종 입학 여부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험을 코앞에두고 딸은 대낮에 강간을 당한다. 미수로 그치긴 했지만 그것은 아빠의 계획에 큰 걸림돌이 된다.

딸에게 몹쓸짓을 한 범인을 찾기위해 경찰서를 드나들고 딸이 순조롭게 시험를 치룰수 있도록 교사와 시험 관계자들도 만나봐야하는 눈코뜰새없는 남자에게 내연녀는 보다 정확한 관계를 요구하고 부인은 집에서 나가달라고 통보하며 노모는 지병으로 쓰러지는등 정신이 없다. 그리고 머릿속에는 깨진 창문 조각이 익명의 경고 메세지처럼 아른거린다.

의사인 남자에게 수술을 앞두고 돈봉투를 건네는 환자, 다 큰 아들에게 잼이며 채소절임등이 담겼을 유리병을 가방에 넣어주는 연금생활자인 노모, 중고 옷가게에서 샀음직한 후줄근한 니트를 입고 낡은 책을 정리하는 도서관 직원인 아내, 이곳은 그토록 부정하고 싶은 희망이라곤 안보이는 나라이지만 그들 전부는 그 나라의 녹을 먹고 사는 이들이다.

공공기관에서는 여전히 뇌물이 유효하다. 의사라는 번듯한 직업을 지녔지만 철망을 쳐야 그나마 발뻗고 잘수있는 우범지역의 5층짜리 대단위 연립에서 살 수 있는 생활 수준. 적은 월급을 쥐어짜서 시킨 자식의 고급 과외에 희망을 걸어야하는 삶. 이 모든 모습이 낯설지 않다.

80, 90년대에 공산주의 사회에서 혈기왕성한 20대를 보냈을 남자. 굳건했던 체제의 붕괴를 목도하며 혼란을 경험하고 올바르고 살기 좋은 세상에 관한 희망으로 30대를 지나왔을 거다. 하지만 자유를 얻자마자 급변할거라 믿었던 세상은 생각만큼 큰 변화를 보여주지 않았다. 마치 완숙인줄알고 깨뜨렸는데 줄줄 흘러나오는 덜익은 노른자처럼 사회를 지탱하는 시스템도 구성원의 멘탈도 설익었다. 더 나은 삶은 여전히 이곳이 아닌 저곳에 있어보인다. 하지만 본인의 삶에선 희망이 없다고 생각한다. 가정은 무너진다. 내 자식만은 이 나라가 아닌 다른곳에서 꿈을 펼치길 바란다. 하지만 정작 자식이 뭘 원하는지는 모른다. 그 스스로가 원하는 삶에 대해선 이미 생각하지 않은지 오래이다. 자식은 너를 위해 모든 것을 바쳤다는 부모의 말에 결코 감동하지 않는다. 삶은 여전히 그곳에서 지속되고 있었지만 그것을 회피하는 이들에게 보장된 것은 절망뿐이다. 이른 아침 창을 뚫고 날라오는 돌멩이는 변화를 주도해야 할 지식인들을 향한 경고이다. 값비싼 수업료를 지불하고 새로운 세상으로 진입 해야할 사람은 결국 여전히 그들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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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영원한 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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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2020. 3. 14. 07:00

뭔가 짜증나는데 자꾸 보게 되는 포스터.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을 패러디한 그림을 또 퍼즐로 만든 것 같은 느낌. 분명 매즈 미켈슨이라고 써있는데 저 사람이 매즈 미켈슨이라는 건가? 이 배우도 참 가지가지 다양한 영화들을 찍었구나 라는 감탄을 품고 보기 시작하는 영화. 사실 데이비드 린치의 이레이져 헤드 이래 닭들이 등장하려고 폼을 잡는 영화들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어서 보는 내내 간당간당했다.

컬트 영화라고 하기에는 굉장히 설득력있고 모범적이며 단순 드라마라고 하기에는 뭔가 너무 혁신적이다. 다시 봐도 똑같은 장면에서 또 웃을 수 있을 것 같은, 매즈 미켈슨이 몸개그를 하는, 어찌보면 슬프고도 아름다운 블랙 코미디.

죽은 아버지가 남긴 비디오 테잎을 통해서 생물학적 아버지가 따로 있으며 심지어 엄마도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 형제는 자신의 뿌리를 찾아 그 미지의 아버지가 살고 있다는 섬마을을 향한다. 오래도록 방치된 듯 보이는 커다란 저택 마당에는 방임된 가축들이 가득하고 또 다른 형제로 보이는 세명의 남자들은 두 형제의 말을 들어볼 생각도 안하고 무작정 폭력으로 응수한다. 조금씩 전부 비범하게 생긴 이유로 결국 전부 닮은 이들. 알고보니 이들의 아버지는 이미 죽은 후이고 아버지의 비밀이 고스란히 남은 지하실은 금기의 장소이다.

다양한 가축들에 점령당한 저택은 오히려 다섯 형제가 그들 가축이 귀여워해 마지않는 애완용 동물이라고 하는 편이 어울릴만큼 주객이 전도되어 기괴하다. 말보다는 주먹이 우선인것이 당연시되고 동물도 사람도 아닌 이상한 가축들이 등장하기 시직하며 설마설마했던 아버지의 비밀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아이를 가질 수 없었던 과학자 아버지는 자신의 줄기세포에서 추출한 물질을 각종 동물의 정자와 결합시켜 여자에게 착상시켜 아이를 얻는데 성공한다. 엄마들은 아이를 낳다가 죽어버리고 우여곡절끝에 태어난 이들은 개와 닭, 쥐 심지어 황소의 유전자까지 지닌채이다. 이론적으로 가능한 이야기일까.

불임이었던 남자는 아이를 낳아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길 꿈꿨을 것이다. 한때는 지상낙원과 같았을지 모를 외딴 섬 속 깊은 숲에 자리잡은 고즈넉한 고택에서. 그리고 그 섬은 희박한 인구로 행정상의 존속 위기에 처해있다. 더 이상의 인구유입도 출생의 징조도 없는 섬마을에서 누군가의 죽음은 절망적이다. 줄어드는 인구로 시름이 깊어질 국가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다.

동물과 인간의 배합처럼 극단적이진 않지만 이제타인종과 다른 국적간의 결합도 퍽이나 일반적인 현상이 되었다. 그리고 그런 결합과 그로인해 생겨나는 조금은 다른 모습의 사람들은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혐오의 대상이 되고 사회적 불협화음과 갈등의 원인이 된다. 하지만 요즘 같은 세상에서 그런 다양성에 관용을 가지지 않으면 어떤 공동체도 존속되기 힘들다.

모든 등장인물들이 신생아 한 명을 지키기 위해 육아서와 기저귀를 들고 날뛰는 코엔형제의 블랙 코미디, 아리조나 유괴사건은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아 기르는 평범한 삶에 대한 염원과 그 가정을 지키기위해서는 또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한지 보여준다.

이 영화도 그런 행복한 가정과 공동체를 꿈꾸는 이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말이 안통하는 다 큰 무대뽀 형제들이 잠들기 전 내복을 입은 채 옹기종기 누워 아이들처럼 책을 읽는 모습, 누가 어떤 접시를 사용해야하는지를 두고 티격태격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 아름답고 사랑스럽다. 박제된 동물처럼 지하실에 잠든 엄마들의 시체, 자신의 서재에서 미이라처럼 영면한 아버지와 조금씩의 그들을 간직하고 있을지 모를 어떤 동물들과의 공존은 불완전하게라도 함께이고픈 가족에 대한 꿈과 다름아니다.

정말 고양이나 하마의 유전자를 가진 사람이 내 이웃이 될 날이 올지도 모른다. 지능이 높은 동물의 유전자는 돈이 많은 사람만 가질 수 있는 불평등이 생길지도 모르는 일이다.

매즈 미켈슨을 비롯한 모든 배우들이 정말 못난이로 나왔는데 하얀 테니스복을 입으니 윔블던의 스타 같아보였다. 패션의 완성은 얼굴인지 옷이 날개인지는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의 문제만큼이나 난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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