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에 나타난 건축물 파스타. 어린이용으로 동물 파스타 , 알파벳 파스타 뭐 많지만 이런 건 처음 봤다. 약간 거래처에서 재고 소진하려고 강압적으로 판촉 해서 마트에 들어선 듯한 이런 반짝 제품들은 실제로 진열된 양만큼 다 팔리면 더 안 나오기 때문에 한 번 정도는 사서 먹어본다. 그런데 피렌체 두오모 버젓이 그려놓고 두오모는 없다. 역시 브루넬레스키의 돔을 파스타로 구현해내기는 만만치 않았나 보다. 할아버지 창업자의 숙원 사업이었던 건축물 파스타를 손자가 기어코 만들어낸 느낌이긴 하지만 뭔가 이런 대화가 들리는 듯하다. '생산 라인 새로 만드는데 투자 비용이 만만치 않아요. 콜로세움까진 어떻게 해보겠는데요 할아버지. 두오모는 정말 불가능해요.'. '네 아비도 그런 소릴 했지. 콜록콜록, 아니 두오모 속 계단을 만들라는 것도 아니고 마지막 심판을 그리라는 것도 아닌데 뭐가 그리 힘든 거니.' 400개가 넘는 계단을 올라 다다른 전망대에서 본 피렌체의 어느 한 곳도 두오모가 드리운 그림자에 정복당하지 않은 곳이 없었다. 언젠가 다시 피렌체에 가더라도 바로 달려가게 될 곳.
파스타에는 4종류의 건축물이 있는데 왼쪽부터 베드로 성당, 피사의 사탑, 콜로세움으로 보이며 세 번째는 모르겠다. 어쨌든 건축물 한 개씩은 삶지 않고 기념으로 남겨놓기로 했다. 로마에 갈 때 쥐고갈 판. 베드로 성당 앞에 가면 왠지 저런 모양의 열쇠고리들을 열 개들이로 묶어서 팔고 있을 것 같다. 약간 어릴 때 그레이트라고 부루마블이랑 비슷한 보드게임을 친척 언니들과 자주 했었는데 약간 그때 세워놓는 호텔 빌딩 별장 표시들이랑도 많이 비슷했다.
근데 삶고 나니 선명하니 예뻤던 색상은 사라졌다. 7분 삶으라고 되어있지만 대략 14분은 삶았다. 시금치 맛 베드로 성당은 쑥 비슷한 맛이었고 강황 맛 베드로는 색이 제일 선명해서 인기였으며 콜로세움은 잘 분질러졌고 피사는 냉장고에 붙어있는 피사 자석과 함께 매번 비교의 대상이 되었다.
피사의 사탑 보러 갔을때 거의 잔디밭에 죄다 저렇게 탑을 미는 포즈를 취하고 있는 사람들이 떠올라서 아주머니 피규어를 동원해서 재연해보았다. 피렌체에서 당일로 이틀에 걸쳐 다녀왔던 뜨거웠던 피사와 더 뜨거웠던 루카가 생각났다. 언젠가 다시 이탈리아 여행을 하게 된다면 가보지 못한 로마와 시에나를 추가해서 다시 피렌체와 코르토나에 다녀왔으면 좋겠다.
혼자 서 있질 못해서 건방지게 베드로 성당을 밟고 올라선 짱구. 약간 강시 느낌이다.
(세번째 건축물은 글을 읽은 친구님이 알려주신 바에 의하면 밀라노 두오모라고 한다. 워낙에 뾰족뾰족 차갑고 그로테스크한 인상이 있어서 밀라노 두오모일거라는 생각을 전혀 못했는데 위로 차례로 삐져나온 부분들을 보니 비슷하게 만들려고 노력한 것 같기도 하다. 그나저나 그렇다면 밀라노 두오모 만들면서 피렌체 두오모는 기어이 안 만든거란 소린데 뭔가 준세이가 섭섭해 하는 소리가 들린다)
'Daily' 카테고리의 다른 글
12월의 무라카미 류 (4) | 2023.01.10 |
---|---|
지난 12월의 차 24잔. (1) | 2023.01.07 |
여름, Vasara, Лето (2) | 2022.09.07 |
7월의 코트 (2) | 2022.07.29 |
타르코프스키의 책 (4) | 2022.05.11 |
옛날 달력 한 장. (2) | 2022.02.28 |
돌고 돌아 집으로 (3) | 2022.02.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