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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lnius Chronicle

Vilnius 46_모두의 하늘, 나의 하늘


지난 목요일 저녁.  고작 10분여의 시간이 흐르는동안 맑았던 하늘이 무너지고 소낙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빈번한 풍경이지만 이날의 하늘은 평소와는 달리 훨씬 극적이었다. 아침에 짙은 구름을 드리우며 쏟아지던 폭우로 여기저기 깊은 웅덩이가 패여져있던 구시가지의 놀이터.  다행히 낮동안은 또 날씨가 활짝 개었다.  빌니우스 현지인들은 물론 아이를 동반하고 여행중인 외국인들까지 그리고 운동 기구에서 장난치며 내기를 하는 히스패닉계 청년들까지 마치 금요일 오후처럼 번잡하고 생동감있던 느낌으로 꽉 차있었던 놀이터. 멀리서부터 차츰 어두워지기 시작하는 하늘.  여름 나무들의 무성한 잎사귀가 바람에 여지없이 흔들리기 시작하고 아직 멋모르고 해맑게 놀고 있는 많은 이들을 뒤로하고 놀이터를 빠져나왔다.  곧 비가 내릴것이다. 




빌니우스를 떠나야하는데 딱 세개정도 챙겨가고 싶은것이 무엇이냐고 물어본다면 아마 난 이 하늘을 일순위에 적을것이다.  사실 유럽 어디를 가든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흔한 느낌의 하늘 풍경일지 모르지만,  다양하게 변주되는 잿빛, 밥 로스 아저씨가 나무가 무성한 빽빽한 숲을 그릴때나 사용하던  그 프러시안 블루, 미드나잇 블루 같은 드라마틱한 색상들이 시시각각 위치를 바꾸며 번져가는 이런 하늘을. 아마 나는 데리고 가고 싶을거다. 왜냐하면 그 하늘들이 내가 느꼈던 수만가지 빛깔들의 감정도 포함하고 있기때문일것이다.  



육중한 하늘이 구시가지의 오래된 건물들을 구겨질듯 나약한 종이 모형으로 둔갑시키는 때.



평소와 다름없이 제한 속도로 주행하는 자동차들이 연기처럼 솟구치는 절망적인 구름들을 피해 질주하는듯 느껴지는 때.



  갈라진 논바닥같은 오래된 자갈길과 어둡게 내려앉는 하늘을 가르며  공중에 늘어뜨려진 트롤리버스의 케이블이 농축된 회색의 빛깔을 품고 미세하게 흔들리는 때.



가벼운 마음으로 수채화를 그리던 이의 맑고 투명했던 물감통이 짙뿌연 회색으로 둔갑할때. 잿빛강이 머리위를 유유히 흐르는 그 순간을 남겨두고는 떠날 수 없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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