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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lnius Chronicle

Vilnius 83_카페 풍경



요즈음 빌니우스 거리 곳곳에서 마주치는 캠페인. 펄펄 끓는 커피 포트나 다리미, 떨어져서 깨지기 직전의 도자기들을 배경으로 폭발 일보 직전의 자신을 뒤돌아보라는 메세지를 담고 있다. 커피 포트가 뿜어내는 연기가 불안감을 주긴 하지만 어쨌든 새로 문을 연 카페의 오렌지색 간판 때문에라도 구시가의 어떤 장소보다 이곳에 가장 잘 어울린다. 이곳은 내가 좋아하는 거리, 행인들이 안겨주고 가는 꽃다발로 한시도 외로울 틈 없는 로맹 개리의 동상과 러시아 드라마 씨어터가 자리잡은 바사나비치우스 거리이다. 문화부나 리투아니아 철도청 같은 주요 관공서들이 유서 깊은 건물들에 터를 잡은 꽤나 진지하고 격조있는 거리인데 이곳에서 아래로 이어지는 몇몇의 거리들을 통해 곧장 빌니우스 대학과 대통령궁, 대성당까지 닿을 수 있음에도 이 거리는 사람들의 관심에서 조금 비껴선 느낌이 있다. 이즈음에서 커피 생각이 나면 극장 앞에 자리잡은 키오스크의 커피를 마셔야했는데 그 키오스크 마저 작년에 사라졌고 그 자리엔 리투아니아의 독립 100주년을 기념하는 작은 참나무 한 그루가 심어졌다.



카페 창 밖으로 지어진지 150년이 넘은 드라마 시어터가 보인다. 대부분의 경우 러시아 극작가의 러시아어 연극이 올라가지만 때로 리투아니아어로 된 작품이 올라가기도 한다. 어쩌면 가장 많이 지나친 거리이고 가장 많이 멈춰선 횡단보도 일테고 수없이 많은 생각들이 때맞춰 깜박이다 사라지는 신호들과 함께였다. 카페가 뚝딱둑딱 공사를 시작했던 순간부터 이 모퉁이를 돌아 걸어가는 일상이 전보다 더 아늑했던것이 사실이다. 그것은 특정 풍경이 구축한 감성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시간만이 쌓아 올릴 수 있는 감정이겠지. 구시가에 이 커피 체인점이 많은데 이 카페의 바리스타들은 한 곳에 머물지 않고 이 지점에서 저 지점으로 옮겨다니기도 한다. 이 카페는 뭐랄까. 그들 중 가장 오래도록 성실하게 일한, 어디에서라도 일사분란하게 커피를 내릴 수 있을 것 같은 가장 분명한 여유로 충만한 어떤 바리스타들과 구시가의 모든 카페들을 전전한 커피 유목민들에게 주어진 일종의 명예의 전당 같은 느낌이다. 커피향이 스며들지 못한 자리를 야무지게 정복한 신선한 가구 냄새, 아직은 포실포실함을 유지하는 출입구 앞 발판 매트, 아직은 두리번거려야 하는 가 본 적 없는 화장실. 특별한것은 없다. 커피맛도 인테리어 원칙도 전부 똑같은 하나의 지점일뿐이지. 익숙해지는데 큰 노력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과 새로움에 대한 강박을 버릴수 있다는 것 그 뿐이다.  



한국에 가기 전에 발행되기 시작했던  한 페이지 짜리 카페 매거진이 어느새 5호까지 나와 있었다. (https://ashland11.com/772). 필진이 계속 바뀔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고정된 작가 한 명이 계속 글을 쓰고 있네. 신기하게도 1호를 제외한 2호부터 5호까지가 모두 테이블 위에 놓여 있었다. 괜히 놓치고 못 읽으면 뭔가 나만 모르는 이야기가 있을 것 같아 집착하게 되는 것. 하지만 15호 정도가 넘어가면 33호, 45호 정도는 없었어도 알아채지 못한채 지나가겠지. 카푸치노 한 잔을 시켜선 그동안 읽지 못한 글들을 한 줄 한 줄 읽어내려 갔다. 재밌었던 글은 '이제는 심지어 젖소도 mo 라고 운다' 라는 제목의 2호. 이곳의 젖소들은 음메라기보다는 무우우 라고 운다. 그런데 그런 젖소들이 mo 라고 울기 시작하고 고양이들조차 miau 대신 mo 라고 우는 이유는 뭘까. 이것은 작년에 개관한 빌니우스의 모던 뮤지엄 일명 'MO 뮤지엄'의 가열찬 마케팅과 평범한 박물관 하나에 쏠렸던 과도한 관심에 대한 글이었다. 작가는 일관되게 냉소적인 어조로 빌니우스에 대해 써내려가고 있지만 그 한 켠에선 이 도시에 대한 아쉬움과 절박함을 내비치는것도 잊지 않는다. 지금의 빌니우스에 보헤미안이 남아 있는지 과연 이곳에 예술가들이 있긴 했었는지 애국을 부르짖는것도 유행이 되어버린듯한 빌니우스가 런던의 테이트나 파리의 퐁피두를 가질 수는 없겠지만 이런 뮤지엄이라도 가지게 된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냉소하며 안도하는 글이었다. 이런 작가의 짧은 글도 계속 읽어주는 사람이 없으면 10호에서 멈춰버릴지 모른다. 도시가 끊임없이 소재를 만들어내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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