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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lnius Chronicle

Vilnius 06_하우스메이트

 

 

 


주말 빌니우스의 날씨는 정말 좋았다.  덕분에 시내는 사람들로 미어터졌다.  노천카페시즌이 된것이다. 하지만 5월이 되면 조금씩 본격적인 도시로부터의 탈출이 시작될 것이다.  연속 3주째 주말마다 따뜻한 날씨가 반복되면서 겨울내내 방치되있던 가족별장을 정리하러 가는 사람들이 늘었다. 월요일부터 찌뿌둥하던 날씨가 금요일 오후를 시작으로 화창해진다. 일기예보상으로는 다음주 목요일오후까지 쭉 흐릴듯.  식당에 있어서는 주말 날씨가 관건이다.  손님이 많아서 도와줘야하는 상황이 발생해도 기분이 좋은것이다.  일요일은 오늘은 쉬는날이었다.  일손이 부족하지 않게 시간표를 짜놓긴 했는데 날씨가 좋으면 쉬는날이어도 조금 걱정이 된다.  좋아해야할지 싫어해야할지 모르지만 오늘은 날씨가 잔뜩 흐렸다.  창가에 잠시라도 앉아 볼 여유가 생겼다.  창밖으로 공장굴뚝의 연기가 보이든 또이또이 공중 화장실이 보이든 탁 트인 도시와 파란 하늘을 볼 수 있다는것은, 4년째 세들어 살 고 있는 이집을 떠나기 힘든 이유이다. 남편이 혼자 살기 시작한 시기까지 합치면 7년째. 7년이란 세월간 많은 세입자들이 이 집을 거쳐갔다.

간혹 집세받는걸 까먹기도 하는 집주인과의 관계가 원만하다는것도 그 이유중의 하나이겠지만, 주방과 욕실을 다른이들과 공유한다고 하더라도 원하는 가구들이 넉넉하게 들어차는 작지 않은 방과 시세보다 싼 임대료도 이집을 떠나기 힘든 이유중의 하나이다.

15분정도만 걸으면 바로 직장인데다가 접근성이 뛰어나서  아무튼 더 많은 자유와 프라이버시가 보장되는곳이 있더라도  당분간은 이곳을 떠나기 힘들것같다.

 



 



여기는 창고 건물인데 가끔씩 수상한 차들이 들어와서 벽에 바싹 주차시키고 뭔가를 거래하는 느낌을 풍긴다..

 집 주변에 벌써 대형 건설 프로젝트가 두개나 진행중인데, 누군가가 저 창고를 헐고 건물을 짓기전까진 이 풍경은 이집을 거쳐간 모가에게 노스탤지어로 남겠지. 요새 한국의 인터넷상에서 자주 거론되는 '하우스 메이트'라는 단어. 무슨 일본어처럼 줄여서 '하메'란다. 우울한 시대상을 반영하는 신조어중의 하나로써 개인영역을 중시하는 한국인들에게 그다지 유쾌한 단어만은 아닌것 같다.

집값이 떨어진다고는 하지만 구매하기에는 턱없이 비싸고 빚을 내서 사자니 집값은 떨어질거라고 하고, 전세계 유일무일한 전세라는 대단하고 신기한 제도가 있지만 그 전세값도 너무 비싸서 어쩔 수 없이 매달 남한테 돈을 주고 살아야하는 다소 우울한 개념의 월세. 하지만 그 월세도 혼자 부담하기는 너무 힘드니 생판 모르는 사람들이라 같이 살아야한다고 해서 안그래도 지독한 열등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해야하는 대다수의 한국 젊은이들을  굳이 또 카테고리화하는 우울한 단어가 아닐 수 없다. 고향을 떠나 다른 도시에 상주하는 젊은 이들이나,  같은 도시에 살지만 부모로 부터 독립하길 원하는 리투아니아 젊은이들에게 하메는 'kambariokas' 라는 단어로 존재한다. 하지만 대다수가 그렇게 사회 생활을 시작하기때문에 불합리한 사회상을 반영한다거나

 하는 부정적인 의미나 뉘앙스는 사실상 함축하고 있지 않다. 대부분이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집을 나오고자하는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고, 돈이 없으면 없는대로 시간당 2200원정도 하는 법정 최저임금을 받고도 자기 나름의 인생을 꾸려가는 학생들이 많다.

 물론 그들의 생활이 풍요롭고 모두가 만족스런 삶을 영위하고 있을거라고는 장담할 수없지만, 이들에게는 남과 비교하지 않고 상대적으로 불행해지지 않겠다는 마인드가 한국인들보다 강한것이 사실이다. 주택을 임대할때 뿐만아니라 구매를 할때에도 가구가 딸린 집을 사는 경향이 있는 이곳에서 수차례 집을 옮겨다니더라도 보통은 자기 옷과 침대보, 책, 컴퓨터가 이삿짐의 전부인 경우가 많다. 자기 냄비나 후라이팬 정도는 보통 가지고 다니지만 보통은 주인혹은 전 방주인들이 남겨둔 식기나 가전제품들을 그대로 쓴다 개인의 프라이버시에 대해서 얘기하자면 한국과 유럽사이에는 여러가지 미묘한 차이가 있다. '하우스메이트를 구할 때 염두에 두어야 할 사항'이라는 짧은 기사를 읽은적이 있는데, 한마디로 거기에 명시된 모든것을 염두에 두다가는 하우스메이트의 삶이 정말 황폐하기 이를데 없어질것같은 기사였다. 그렇지 않아도 마지막 대안으로 선택된 삶인데 규칙과 또 다른 규칙으로 자신은 물론 타인까지 옭아매야하는 상황이 된다. 프라이버시라는것은 엄연히 자신의 사생활을 보호받길 원하는 태도보다는 남의 사생활을 보호하고자하는 태도가 바람직하다. 나 역시 알게모르게 누군가에게 방해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염두에 둬야하는것 같다.

 살아온 환경과 사고방식이 다른 사람들이 모여사는데, 자기 기준을 적용해서 모두가 자기처럼 살길 바라는것은 욕심이다 이거다.

 왜 남들은 이렇게 안하지 라고 생각하기 이전에, 내 자신도 남들이 원하는 대로 모든걸 하고 있지 않다는 생각을 해야한다.

 중요한것은 정작 남들은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 말하지 않는다는것이다. 어느정도는 타인도 불편을 감수하고 이해하고 있다는 소리다. 물론 내가 이런 프라이버시의 개념을 정립하기까지는 여행중의 호스텔 생활과, 지금 살고 있는 이 집의 자유분방한 풍조가 한몫했다 하겠다. 집주인의 관심밖에서 방치되다시피했던 이 집에서 많은 친구들이 원하는대로 페인트칠을 하고 가구를 옮기고 그랬다. 새로운 세입자들은 어느정도는 전임자들의 마인드를 바통처럼 이어받았다. 한때 사진가의 암실로 쓰여졌던 이집의 독특한 구조도 새로운 세입자들을 정돈되지 않는 주택의 분위기에 동화되게끔 했다. 하지만 이곳 리투아니아의 모든 사람들이 남과 살면서 충돌없이 원만하게 살고 있다고 단정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단지 적어도 지금까지 이집에서 냉장고에서 딴 사람 음식을 먹었다고 해서 분쟁이 오가거나, 넌 왜 화장실 청소 한번도 안해 라는 화두를 던진 사람조차 없었다는 사실이다. 누가 화장실 청소하면, 그건 화장실을 깨끗하게 쓰고 싶어하는 사람의 문제인거고, 누군가가 설거지로 가득한 싱크대를 못견뎌한다면 자기 설거지를 제때제때 하면 그만이지, 너 왜 설거지 안하니 하고 유치하게 다툼을 걸 이유는 없다 이것이다. 그냥 어차피 다 함께 사는거 그까이거 편하게 살지 뭐 그런 방식이다. 물론 최소한의 인간성은 갖춰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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