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갑고 고맙게도 친구가 보내준 차력 (어드벤트 티 캘린더를 이렇게 부르기로 했다.. ) 매일매일 짧게나마 기록한 12월의 반려차들.
12월이 되었다. 본격적인 겨울의 시작. 생각보다 일찍 갑자기 큰 눈이 와서 급하게 아이들 방수되는 겨울부츠와 옷을 장만하느라 허둥댔다. 해가 더할수록 뭔가를 미리 준비하기보단 코 앞에 닥쳤을 때 해치우는 것에 크나큰 쾌감을 느끼게 되었다. 12월 1일 오늘은 유치원에 초대되어 나뭇가지와 상록수들의 잎사귀를 엮어 어드벤트 리스를 만들었다.
오래전에 리가를 처음 여행할 때 중앙역 근처 대형 마트에서 이 회사의 50그램짜리 딸기향 홍차를 샀었다. 커다란 딸기 두 개가 그려진 귀여운 빨간 틴케이스였는데 그것이 아마 내 돈 주고 산 첫 차가 아니었는지. 부엌에 놔두고 양념통으로 쓰며 리가의 기념품처럼 간직했었는데 녹이 슬었었는지 버리고 없다. 그땐 이 차력에 들어있는 차처럼 센세이션이란 추가 명칭 없이 그냥 딸기 가향차였는데 어쨌든 그 이후로 처음 마시는 것이라 반가웠다. 딸기는 없어서 레드커런트를 잔뜩 올려 프렌치토스트를 만들어 먹었다.
어제 토스트에 쓰고도 남은 레드커런트를 열심히 단것들과 소진시키는 중이다. 날이 추워지니 확실히 라즈베리 블루베리 같은 것은 아예 없거나 있어도 비싸고 비싸도 맛이 없다. 그들에 비해 레드커런트를 좋아해서 다행이다. 다른 베리들이 시기와 상태에 따라 맛의 편차가 심한 것과 달리 거의 한결같이 신맛일 뿐인 레드 커런트. 과일에 이런 표현이 가능하다면 가장 강인하고 올곧고 융통성 없는 여름 베리가 아닐는지.
캐모마일은 사실 꿀 한 숟가락을 손에 쥐고 두꺼운 양말을 신고 온몸을 이불로 똘똘 말고 비스듬히 앉아서 약처럼 마시는 차인데 단지 샛노랑이었단 이유만으로 오늘 돌아오는 길에 마트에서 노란 빵을 사 와서 함께 마셨다.
빨간 양파 쳐트니에 마요네즈를 섞으면 롯데리아의 데리버거 양념맛이 난다. 그래서 햄버거 만들 때도 곧 잘 발라먹는데 신기한 건 고기가 없어도 저 둘을 바르면 그냥 고기를 먹는 느낌이 든다는 것.
캐시베이츠 얼굴이 생각나는 아침.
전날 저녁에 먹고 남은 것들과 온갖 열린 통조림들을 털어서 모아서 먹는 점심. 온통 녹색인 이것에 냉털 프리마베라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먹으니 모든 재료들이 문득 신선하게 다가왔다.
참 좋은 슈톨렌.
식탁 위에 늘어놓은 음식들을 오며 가며 집어먹으면 주말이 지나간다.
일주일의 하루정도는 블린이 좋다.
과자로 덮어서 보이지 않는 컵.
완두콩과 오이피클의 푸르죽죽한 색상은 전염되는 것 같다.
아무도 먹지 않아 고르곤졸라를 여기저기 얹어서 없앴다.
아보카도는 간혹 잘 익은 상태일 때도 있다. 거듭되는 실패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성공 확률이 낮은 행위에 매진하는 인간의 심리를 연구하는 학문 이름을 아보카돌로지라고 해야 한다.
크루아상이 남아서 고기에 양파 쳐트니 발라서 햄버거를 먹었다. 햄버거 번의 최적격자는 간혹 크루아상이 아닐까 생각한다. 대신 크루아상이 주인공으로 남을 수 있게 내용물은 최소화해야 한다.
달걀이 있어서 참 다행스러운 삶이다.
금요일 저녁에 열심히 만든 것들과 티타임.
일터에 가져가서 아침티.
씹을 것 총동원하여 저녁의 티타임. 과일차들이 단연 많은 차력.
리들 들린 김에 사 온 슈톨렌에 곁들여 레몬 홍차. 확실히 슈톨렌 가격과 건포도 함량은 반비례하나 보다. 리들 슈톨렌은 건포도가 아주 많이 들어있다. 매번 만들어봐야지 생각하다 시기를 놓치고 마는 것 중의 하나.
금요일 저녁에 만든 브라우니와 마들렌 곁들여서 티타임. 피라미드 마트 케이크도 덤이다.
요즘 들어 리투아니아가 핑크 수프( 차가운 비트 수프)를 거의 국가 브랜드로 열심히 밀고 있는데 이 쉼타라피스 (Šimtalaps)도 리투아니아를 대표하는 크리스마스 케익이 되면 좋겠다. 원래 양귀비 씨만 가득 넣는 것이 정석인데 언젠가부터 브랜디나 럼에 절인 건포도를 조금씩 추가하기도 하고 겉표면에 슈가 파우더를 뿌리기도 하고 있으니 그 느낌이 딱 성탄 케익이다. 단지 오래전 리투아니아에 군사 용병처럼 유입된 타타르족이 가져온 음식이라 대놓고 리투아니아 것이라고 하기에 좀 주저하는 것도 같다. 만드는데 손이 많이 가서 파는 곳이 아주 드물다. 전통 장터 같은 것이 열리면 항상 있고 주문제작하는 곳이 많다. 크리스마스 보내고 파네베지에서 가져왔다.
냉동해 놓은 브라우니 꺼내서 올해의 마지막 출근.
곰발바닥 같아진 와플과 함께 마지막 차를 마시며 마무리하는 차력. 와플과 차와 유리컵, 2023년의 시간, 가족, 친구, 그리고 이 공간, 모두 모두 고맙다.
'Daily'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난 일요일의 리가 (3) | 2024.10.06 |
---|---|
지난 시즌의 테킬라. (4) | 2024.01.23 |
늦여름의 노란 자두 (4) | 2023.10.01 |
8월의 레드 (4) | 2023.09.21 |
누구의 바다도 아닌 발트 (4) | 2023.07.15 |
빌니우스의 테이글라흐 (5) | 2023.06.01 |
부활절 지나고 먹은 파스타 회상 (5) | 2023.05.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