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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니우스의 테이글라흐

 

 
  구시가의 필리모 거리의 유태인 회관 건물에 겸한 베이글 카페. 직장에서 가까워서 오래전에 자주 가던 곳인데 뜸해졌다 요새 간혹 다시 간다. 예전부터 필리모 거리에 있는 폴리클리닉에서 아침 일찍 굶은 채로 피검사를 하고 나면 하나의 의식처럼 배를 채우러 가던 곳이 두 군데 있는데 그중 하나이다. 우선 병원에서 가장 가깝고, 딱히 맛있지는 않은 커피와 디저트가 있고 가정식에 가까운 음식을 파는 곳들. 이곳은 베이글 샌드위치나 샥슈카 같은 간단한 음식만 팔았었는데 오랜만에 가보니 뒷공간을 완전히 터서 꽤 전문적인 유대 음식점이 되어있었다. 이들의 간혹 얄미울 정도로 합리적이며 얄미움을 느꼈다는 것에 나름의 자책을 하게 만드는 알고 보면 딱히 잘못한 것 없이 그저 철두철미 한 것일 뿐인 그런 자기 확신에 찬 본성들이 카페 내부 모습에서 전달된다. 오래전에 보았던 드라마 언오소독스에 나오는 정통파 유태인 커뮤니티의 폐쇄적인 분위기이다. 천장의 전구를 삼분의 일 정도는 돌려서 빼놓은 듯한 조도와 카페 구석에 비닐을 벗기지 않은 소파가 있을 것 같은 원리원칙에 입각한 인테리어, 어디선가 늘 소리 없이 동원되고 있을 것으로 보이는 단체로 점심을 먹으러오는 견학생들의 질서 정연한 움직임까지. 앉아있는 내내 종이 봉지에 카페 로고 스탬프를 찍는 소리가 시간차를 두고 귓전을 때렸으니 그 단호한 리듬감은 그 공간에의 묘한 소속감을 주었다. 이날은 작은 커피 한잔과 작은 빵 한 조각을 먹으려고 들어갔는데 카운터 근처에 정말 맛있어 보이는 아이들이 잔뜩 놓여있어서 하나를 산다. 카페에 있는 이런 작은 크기의 디저트들이 참 좋다. 카푸치노든 라떼든 큰 용량의 커피가 딱히 땡기지 않을때 이런 작은것들에 적합한 작은 커피들을 후딱 들이키고 깔끔한 기분으로 조금만 더 머물다 가볍게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난 이것이 시럽코팅이 잔뜩 된 부드러운 미니 시나몬 롤 정도일 거라고 생각하고 에스프레소 마끼아또와 함께 주문했다.

 


주문을 받던 키 작은 중년 남성은 딱 봐서 유태인이라고 할 수 있는 특징은 결단코 없었으나 그가 유태인이라고 한다면 완전히 납득이 가는 그런 특징으로 충만한 얼굴이었다. 그 자리에 있던 손님이며 동료들과 러시아어와 영어를 섞어 쓰며 또 알아들을 수 없는 다른 언어를 중간중간 사용했는데 아마도 이디시인 걸로 보인다. 그런데 내가 저 통닭 모양 디저트를 카페에서 먹겠다고 했지만 계속 봉지를 꺼내고 만지작거리길래 제발 접시에 담아 포크와 함께 주십사 내가 아는 모든 언어의 '여기서'를 내뱉었지만 결국 그를 저지하지 못하였다. 결국 찐득하기 짝이 없는 저것을 종이 봉지에서 손으로 꺼내어 에스프레소 잔 받침에 얹고 한 입 깨물려는 순간 나의 모든 '여기서'를 보란 듯이 무시하며 그가 흘리던 의문의 미소를 이해하게 되었다. 이것은 포크로 찍어서 부드럽게 발려내서 먹기엔 어림도 없는 흡사 한국의 전통 과자 중에 동글동글한 콩을 조청과 섞어 굳혀서 자른 그 네모난 모양의 이에 달라붙는 과자(찾아보니 '오란다' 과자라고 하는데 이 또한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다)보다 몇 배는 더 딱딱하고 찐뜩거리는 과자였다. 조금은 과자 맛동산이 생각나기도 했다. 그는 내가 종이 봉지에서 저 통닭을 반쯤 꺼내서 봉지와 함께 손으로 잡고 무사히 깨물어 먹기를 염원했던 것 같다. 결국 칼을 달라고 해서 종이봉투로 한쪽을 누른 채로 톱질을 하듯 잘라보았지만 식사용 나이프로는 어림도 없었다. 생강가루와 양귀비 씨 믹스가 반 톨도 도망가지 못하고 꿀시럽 코팅에 떡고물처럼 찰떡같이 달라붙어 있는 이것은 테이글라흐라고 한다.  Teiglach 테이글라흐는  뭔가 로베르토 베니니를 닮은 이태리계 유태인이 운영하는 유리 공방의 이름 같기도 하고 유태인 커뮤니티 정기 매거진 이름 같지 않은가. 어떻게 만들어야 이렇게 딱딱해질 수 있는지 궁금하여 테이글라흐 제조 영상들을 여럿 찾아보았는데 이 카페의 테이글라흐가 모습면에선 우선 가장 멋졌다. 보통 유태인 가정에서는 저것보다 훨씬 더 조그만 크기로 많이 만들어서 접시에 쌓아 놓는다. 여러 방식의 제조 방식이 있었는데  달걀을 많이 넣은 반죽을 길게 밀어 저렇게 꽈배기처럼 꽈서 도나스처럼 기름에 튀겨 꿀과 설탕 시럽으로 코팅하는 방법이 있고 반죽을 오븐에 구운 후 시럽에 코팅하는 방법이 있었지만 이것은 모두 정석에서 변형된 납득가는 방식 같다. 생소해서 오히려 가장 정통에 가까워 보이는 방식은 꼬은 밀가루 반죽을 아예 처음부터 꿀과 설탕 시럽에 넣고 끓이는 것이다. 그리고 다 되어 갈 때쯤 펄펄 끓고 있는 꿀설탕 냄비에 뚱딴지같이 뜨거운 물을 냅다 붓고 뚜껑을 닫는다. 그럼 뭔가 강한 열기로 증발이 되면서 그 꿀들이 반죽에 완벽히 엉겨 붙는 것일까. 이것을 한번 소량으로라도 만들어보고 싶은데 리투아니아 꿀이 적당할지 모르겠다. 사실 딱히 맛은 없었지만 다시 먹어 보고 싶다. 그때는 아마 우유가 들어간 부드러운 커피에 좀 담궜다가 먹으면 부드럽지 않을까 싶지만 꿀코팅은 철옹성 같으려나. 아무튼 이 작은 시나몬 통닭은 결코 작은 커피와 먹을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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