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는 꽤 오래 전 영화이고 짧은 단편 영화이며 아마 가장 짧고 경쾌하지만 먹먹한 로드무비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서울 풍경을 지닌 영화들을 떠올리다 생각나서 짧게 나마 기록해둔다. 그런데 이 싱그러운 여름 날의 영화는 할아버지 제삿상에 빠진 콩나물을 사러 간 아이가 과연 무사히 집으로 돌아올 수 있을지 걱정 어린 시선을 거둘 수 없게 하며 의외의 긴장감과 초조함을 선사한다. 어떤 관객은 콩나물을 향한 어린 소녀의 여정을 있는 그대로 즐겼을지도 모른다.
목적이 확실한 여행이 있고 불분명한 여행이 있다. 이 여행도 저 여행도 쉽지 않다. 전자는 좀 더 빨리 효과적으로 잘 가야한다는 생각에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고 후자는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는 모호함에 힘들다. 하지만 어떤 여행에든 위험이 따르고 예상치 못한 변수가 존재한다. 어린 소녀의 콩나물을 향한 여정도 예외는 아니다. 늘 지나다니던 골목이 공사중이라 지나갈 수 없자 소녀의 여행 동선은 바뀌어 버린다. 길에서 만난 누군가는 아이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누군가는 도움의 손길을 뻗으며 누군가는 아이를 울게도 하고 웃게도 하며 누군가는 그를 보살펴주고 누군가는 아이로 인해 웃는다. 모두 반나절 남짓한 짧은 시간에 벌어지는 일들이다. 콩나물 생각에 그저 서두르기만 했다면 없었을 일들이다.
우리의 삶이 반드시 수행해야할 미션으로 가득한 남이 시킨 심부름 같은 것이라면 그 삶은 분명 지루하고 고달플거다. 스스로 지정한 목표가 있다면 뚜벅뚜벅 나아가면 될일이다. 길을 걷는 그 행위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린다면 순간 순간의 희노애락을 그냥 지나치지 않겠다는 신념으로 가득찬 여유로운 삶이 될 수 있을거다. 그리고 뚜렷한 목적없이 빈둥거린다고 해서 그 여행이 무의미한 것도 아닐거다. 아이는 콩나물을 사와서 제삿상에 올려 놓았을까. 지나고 나면 뜨거운 여름날 마신 막걸리 한 잔이 가져다준 몽롱함처럼 무엇을 위해 살아왔는지 조차 결국 모호해지는 것은 아닐까.
해바라기는 해만 바라보며 살아 해바라기인데 콩나물은 검은 천으로 덮어놔야 쑥쑥 자라는 요상한 태양 회피 식물이다. 같은 식물의 인생도 이리 다른데. 모두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모두가 따라야 할 것 같은 것이란 없다. 우리의 삶을 살찌우고 풍요롭게 하는 것도 다 같을 수 없는 이유이다.
아이가 콩나물을 사러 가다 동네 놀이터에서 놀고 오락기 하는 아이들을 구경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 부분은 실제로 내가 살던 동네이다. 오락기 건너편은 중고등학교 시절 일주일에 한 번은 들락거렸던 약국 옆에 딸린 비디오 가게 앞이었다. 그 약국과 비디오 가게는 재개발로 동네가 헐리기도 훨씬 전에 문을 닫은 상태였다. 갑자기 정신이 팔려 콩나물을 잊고 놀기 시작한 아이처럼 나도 그 장면은 몇 번을 돌려보며 그 길을 지나 통학하던 어린시절을 회상했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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