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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부활절 회상 부활절을 앞두고 리투아니아 어린이들은 유치원으로 완숙 달걀을 가져간다. 적신 휴지에 물감을 묻힌 후 그 위에 달걀을 굴리면 나름 부활절 달걀이 만들어지나 보다. 점토로 만든 둥지 속에 봄기운을 받아 기지개를 켜며 돋아나기 시작한 여린 풀잎들 몇 가닥을 집어넣고 색칠한 달걀을 얹는다. 그렇게 손바닥만 한 세상에도 나름의 봄이 깃든다. 추운 겨울 뒤에 따뜻한 봄이 찾아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만 계절이 바뀌는 순간에만 작동하는 그 명민한 감각은 살아있다는 단 하나의 명백한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사실 만끽 할 수 없다. 하지만 살아있다는 그 벅찬 사실을 내가 매 순간 절절하게 느끼고 감사하며 살고 있나 하면 애석하게도 딱히 그런 것 같진 않다. 부활절은 고통을 겪고 죽음을 맞이했다 다시 살아난 누군..
리투아니아어 132_ Dar po vieną 한잔만 더 이른 아침 길에서 스티커를 주웠다. 우리 동네에 에 나오는 사람들이 모여있을 것 같은 분위기의 자그마한 술집이 있다. 들어서자마자 입구 맞은편에 바가 있고 테이블이 전반적으로 높아서 의자에 앉지도 서지도 않은 사람들이 서로 부대끼는 술집인데 공교롭게도 스티커는 그 술 집 앞에 있었다. 아직 스티커의 찐득한 점성이 남아있는 틈을 타서 좋아하는 책에 잽싸게 붙였다. 남자는 헌정되었다. 잘 어울린다. Dar po vieną ir į darbą 한잔(씩)만 더 마시고 일하러 가자. 낮술을 마시고 저녁에 일하러 가는 사람일 수도 있고 아예 근무 중에 상습적으로 술을 마시는 사람일 수도 있지만 밤새 술을 마시고 바로 직장을 향하는 사람의 모습이라고 생각할 때 이 문장은 가장 애잔하게 와닿는다. 마치 숙어 같다..
오스트리아 2센트 동전 - 에델바이스,알프스의 별,알프스 보드카 그리고 사운드 오브 뮤직 1200km 길이의 알프스 산맥은 프랑스, 스위스, 모나코, 이탈리아, 리히텐슈타인, 오스트리아, 독일 그리고 슬로베니아까지 8개국의 298 128 km²에 달하는 면적을 차지하며 뻗어나간다. 리히텐슈타인은 나라 전체가 알프스에 자리 잡고 있다. 알프스 산맥 곳곳에 솟아있는 해발 4000미터가 넘는 봉우리만 해도 128개. 오스트리아는 국토의 2/3 가 알프스 산악 지형이다. 이탈리아의 알프스 도시, 토리노에 있는 몰레 안토넬리아나가 새겨진 이탈리아 2센트 동전 (https://ashland.tistory.com/1295)과 알프스로부터 뻗어 나온 트리글라우를 새긴 슬로베니아의 50센트 동전(https://ashland.tistory.com/558975)을 보면서 알프스에 조금이라도 지분을 가진 유럽..
리투아니아의 보훈 대상자 빌니우스의 대중 교통 수단은 버스와 트롤리버스이다. 환승제도는 따로 없고 30분 구간티켓가격은 0.65유로, 1시간 구간은 0.9유로이다.  지난 한 달동안 이 대중교통 가격 인상때문에 말이 많았다. 30분구간 티켓을 없애고 일괄 1.25유로까지 가격인상을 한다고 했다가 반발이 심해서 부랴부랴 30분 티켓은 유지하되 7월부터 1유로까지 인상하는걸로 잠정 결론이 났다. 작년부터 오래된 트롤리버스를 순차적으로 교체하는 중인데 새로 도입된 깔끔한 트롤리버스를 더 많은 사람들이 타고 다니게 하려면 0.80유로 정도로만 올려도 되지 않으려나. 80센트보다는 딱 떨어지는 1유로도 괜찮아 보이긴 하지만 왕복 2유로는 리투아니아 임금 수준을 생각하면 확실히 좀 비싼감이 있다. 택시 이용객만 많이 늘어나는 건 아닌지 모..
리투아니아의 늪(Pelkė)과 미국의 장갑차(Šarvuotis) 빌니우스에서 47.5km 정도 떨어진 곳에 파브라데(Pabradė)라는 도시가 있다. 벨라루스 국경까지 10km 떨어진 이 도시에는 리투아니아의 군사 훈련장이 있다. 칼리닌그라드의 국경도시 키바르타이(Kyvartai)와 함께 군사적으로 중요한 도시이다. 지난 수요일 이 파브라데의 늪지대에 70톤 규모의 미국 장갑차가 빠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미군 4명도 함께 실종됐다. 나토 가입국인 리투아니아에는 1000명가량의 미군 병력이 순환 주둔한다. 이런 장갑차는 전투에 나가는 기갑장비들이 어딘가에 빠지거나 파괴됐을 때 끌어내거나 작동에 문제가 생겨 고쳐야 할 때 투입되는 장비이다. 궤도나 엔진 등만 보면 전차 장비와 흡사하지만 공격용 무기는 탑재되지 않았고 대신 크레인 같은 장비들이 있어서 전투 장비들의..
라 코치나 (La Cocina, 2024) 노천 테이블들이 놓이는 여름 시즌, 빌니우스 구시가를 걷다 보면 식당에서 흘러나오는 특유의 기름 냄새가 있다. 튀김기에서 갓 건져진 냉동 너겟, 오징어링, 버펄로 윙, 감자튀김 같은 것들이 기름을 떨쳐내며 퍼뜨리는 냄새, 햄버거에도 스테이크에도 아동 메뉴에도 립에도 어디에도 곁들이는 것들, 어떤 인종도 어떤 성격의 손님도 전부 만족시킬 수 있을 것 같은 평균적이고 광범위한 메뉴, 고급 레스토랑과 비교하면 더없이 저렴하지만 패스트푸드나 일반 식당보다 월등이 맛있지도 않으면서 결코 싸지 않은 가격의 음식들, 분주하게 걸어 다니는 능숙한 서빙 스탭들로 가득한 그런 식당들이 있다. 영화는 뉴욕 타임 스퀘어 근처에 위치한 딱 그런 분위기의 거대한 레스토랑이 배경이다. 주고객은 뉴욕을 방문하는 관광객들,..
회색, 스톤헨지,거인들의 어깨 'Sunday morning call'이라고 일요일이면 간혹 생각나는 오아시스의 노래가 있다. 이 노래가 속해있는 앨범 제목이 'Standing on the shoulder of Giants'인데 예전에 시디에 들어있던 부클릿에는 그 거인이 선배 영국 뮤지션들을 뜻한다고 쓰여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 노래를 듣고 있으면 그렇게 앨범 제목이 떠오르면서 비가 내리던 추운 여름날, 회색 하늘 아래 서있던 스톤헨지가 생각난다. 몰타 거석신전들에 대해 알아보다가 이런 거석 기념물들을 보통 Free-standing structures라고 부른다는 걸 알게 됐다. 너무 멋있는 조합의 단어란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우리 역시 그런 구조물 중의 하나라서 스톤헨지와도 몰타의 신전들과도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The Price of milk (2000) 나의 완소( 牛 )영화들의 시조새라고 할 수 있는 The Price of milk... 백 마리가 넘는 소를 키우는 뉴질랜드 커플 이야기이다. 등장하는 소의 규모만 놓고 보면 독보적이지만 모든 소영화에서 그렇듯 그들은 조연일 뿐. 반지의 제왕에서 엘프 스미스 요원의 말을 안 듣고 반지를 버리지 않아서 모두를 곤경에 빠뜨리고 사라지는 이실두르가 만든 영화이다. 우리나라에선 이란 제목으로 나왔는데.. 퀼트 이불을 도난당하는게 중요한 사건인 건 맞지만.. 차라리 그냥 투박하게 이나 라고 했으면 뭔가 이나 같은 느낌이 들어서 더 좋았지 않았으려나. 장면 몇 개가 필요해서 원제로 검색을 했더니 쓸만한 영화 스틸 컷은 없고 정말 너무 우유 가격에 관한 보도자료들만 난무해서 결국 오래전 중국에서 사 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