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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

White Bridge (2017)


 

 
 
'언젠가 폭이 넓은 강에 강물이 흘렀고 다리가 생겼다. 그리고 물이 흐르지 않게 된 후에도 다리는 그 자리에 남았다. 다시는 물이 흐르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강에 물이 흐르던 날 바하레가 웃었다. '
 
엄마와 소녀가 차를 타고 어디론가 간다. 도시를 벗어난 자동차가 황량한 도로를 달린다. 언젠가 그 길에서 교통사고가 나서 남편은 죽었고 딸아이는 장애를 얻었다. 아이는 사고 당시의 기억 때문에 눈을 가린다. 그날 아이는 발달 검사를 망친다. 장시간 차를 타느라 힘들었고 소변 마렵다는 소리를 제때 하지 못해 오줌까지 싼다. 그 검사 결과에 일반학교에 남느냐 특수학교에 가느냐가 달려있었다. 바하레는 결국 일반 학교에 다닐 수 없게 된다. 엄마는 딸아이는 지능에 전혀 문제가 없다며 바하레가 다니던 학교에 남길 원하지만 교장은 법적으로 불가능하다며 완고하다. 
 
아침이 되면 바하레는 이전에 다니던 학교까지 다시 걸어간다. 하루 종일 교문밖에 서서 체육 수업을 하는 반아이들을 구경하고 때로는 같은 반 친구가 교과서를 들고 나와 진도 나간 곳을 알려주기도 한다. 집에 와선 혼자서 진도를 따라가며 언젠가 다시 다니던 학교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놓지 않는다. 바하레는 간혹 묘지에 간다. 묘비에 남아있는 아빠 사진에 입을 맞추고 혼자서 숲을 거닐고 늘 다리를 건너 집으로 돌아간다. 더 이상 물이 흐르지 않아 이미 오래전에 말라버린 강. 교장은 이 강에 물이 흐르면 그때나 학교에 다닐 수 있을 거라고 비꼬며 못을 박는다. 물이 흐르지 않을 강이라고 인식한 자에게는 절망적인 선고이지만 바하레에게는 오히려 희망이 된다. 바하레는 언젠가 물이 흐를 거라 믿는다. 학교 친구들도 그 말을 듣고 함께 기뻐해준다. 강에 물이 흐르는 것은 당연하니깐. 
 
 

 
 
엄마는 마지막 희망을 가지고 어떤 교수를 찾아간다. 그는 바하레가 다시 테스트할 기회를 얻을 수 있게 돕는다. 아이는 판자 하나가 모자른 창문 사이로 빛을 본다. 다리를 건너던 이란 소년은 페르시아 악기 도타르를 연주한다. 아름다운 도타르 연주와 함께 아이는 다시 힘을 낸다. 그리고 어느 날 정말 기적처럼 물이 흐른다.  다시 발달 검사를 받으러 가는 길, 언젠가 아빠와의 마지막 여행을 떠났던 그 길을 다시 지나는데 바하레는 전처럼 눈을 가리지 않는다. 아이에게는 아마 아빠를 잃은 상실감을 치유할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그리고 결국 다시 학교로 돌아올 수 있게 된다. 바하레는 환호하며 교문을 지나 친구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간다. 
 
굉장히 시적이고 아름다운 영화이다. 대사는 적고 카메라는 엄마가 일을 하러 간사이 혼자서 마을을 걷는 바하레를 줄곧 따라다닌다. 그 풍경은 사뭇 삭막하다. 학교 갈 시간에 총을 쏴서 비둘기를 잡는 애들에게서 희망을 볼 순 없고 땔감을 한가득 담긴 지게를 지고 다리를 건너는 할아버지는 물이 언제 흐르냐는 바하레의 순진한 질문에 해줄 말이 없다. 볼거리가 많은 복잡한 도시도 아니고 아이가 꼭 해내야 할 미션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다른 영화 속 아이들처럼 바하레도 간절히 원하는 게 있다. 바하레의 집념은 딸이 정상아라고 믿고 대하는 엄마의 원칙에서 생겨난다. 다른 영화들에서 부모들이 아이들의 목소리를 쉽게 외면했던 것을 생각하면 엄마는 아빠를 잃은 바하레의 불안정한 시선을 천천히 따라가며 따스한 칭찬과 눈빛으로 사랑하는 마음을 전달하려고 애쓴다. 
 


 
신체적인 핸디캡을 가진 주인공이 나오는 이란 영화가 유난히 많다. 수술로 시력을 회복했지만 한번도 본 적 없는 세상을 보게 되자 오히려 절망에 빠지는교수의 이야기 <윌로우 트리 The Willow Tree>,  맹인특수학교에 다니다 방학을 맞아 고향에 돌아오지만 재혼하고 싶은 아버지에게 걸림돌이 되어 멀리 목수의 집으로 보내지는 모하메드의 이야기 <천국의 색깔 The Color of Paradise>, 딸의 보청기를 고치러 가던 레자 나지의 <참새의 노래 The Song of Sparrows>, 말을 심하게 더듬는 누나가 읽을 책을 구하기 위해 애쓰던 라술의 이야기 <스태머 Stammer>. 그리고 바흐만 고바디의 힘든 영화들까지 
 
그 강에 어떻게 다시 물이 흐르게 되었는지는 끝내 설명되지 않는다. 대신 기다림의 시간, 믿음의 태도, 그리고 아이를 포기하지 않는 어른의 시선을 조용히 보여줄 뿐이다. 기적은 견뎌낸 시간의 보상처럼 찾아온다.
 
이런 태도는 많은 이란 영화들이 장애를 다뤄온 방식과도 맞닿아 있다. <윌로우 트리> 가 ‘보게 되었음에도 더 불행해지는 인간’을 통해 결핍의 의미를 되묻고, <천국의 색깔> 이 맹인 아이를 통해 도리어 어른들의 이기심을 드러내며, <참새의 노래>와 <스태머>에서 평범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주변 사람들이 그들의 존엄을 지켜냈듯, <화이트 브리지> 역시 장애를 극복의 대상으로 소비하지않는다. 이 영화가 힘을 쏟는 부분은 그들의 회복이라기보다는 그들의 모삽 자체를 존중하겠다는 의지이다. 바하레는 특별한 존재가 되지는 않는다. 다만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온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의 엄마가 바하레에게 그랬던 것처럼 조금 천천히 따뜻하게 아이를 바라보는 법을 배우라고 한다.
 
이런 영화들이 반복해서 보여주는 것은 바로 이 ‘자리’에 대한 이야기다. 사회가 밀어낸 사람들을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려놓으려는 조용한 노력. 물이 흐르지 않을 것 같던 강에 물이 흐르듯, 닫혀 있던 길은 어느 순간 열린다. 그것은 신의 개입일 수도 있고, 사람의 인내일 수도 있다. 어쩌면 둘 다일지도 모른다. 바하레가 다시 교문을 통과해 친구들 사이로 뛰어가는 마지막 장면은 그래서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 그것은 승리의 환호가 아니라, 존재를 인정받았다는 안도의 표정에 가깝다. 우리는 과연 누군가의 강이 아직 마르지 않았다고 끝까지 믿어본 적이 있을까. 그저 제자리로 돌아오려고 애쓰는 누군가를 알아챌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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