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톨릭 국가인 리투아니아에서는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대성당 광장과 성당 내부에 프라카르텔레 Prakartėlė라고 불리는 세트 형식의 조형물이 등장한다. 야외의 공공장소에서는 비교적 크게 만들어지지만 실내 어디에 놓이느냐에 따라 크기는 천차만별이며 선반 위에 놓을 수 있을 정도의 미니어처 모형이 되기도 한다. 기독교 신자가 아니어도 옛날이야기라고 생각하며 읽으면 성경이 재밌는 것과 마찬가지로 개인적으로 이 프라카르텔레를 볼 때에도 신성한 기분이 든다기보다는 묘하게 귀엽고 또 어떤 컨셉으로 꾸미고 바뀔까하는 호기심도 생긴다.

이 단어는 '둘러싸다', '울타리를 치다'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의 Praesaepe에 해당한다. 넓게보면 '가축을 가둬두기 위한 우리', '마구간'을 뜻하며 보금자리나 은신처를 상징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성경이나 찬송가의 '구유'라는 단어에 해당되는데 구유 자체는 말이나 소에게 줄 음식을 담는 그릇을 뜻한다. 말그대로 예수가 담겨져 있는 장소이다.
하지만 Prakartėlė라고 하면 예수 탄생 장면을 뜻하는 Nativity scene과 동일한 포괄적인 의미로 받아들이면 된다. 평소에는 거의 쓸 일이 없기도 하고 비슷한 단어도 많아서 매번 크리스마스가 되면 이 예술적이고 성스러움을 꾀한 마구간 앞에 서서 이 단어를 생각해내려 애를 먹는다. 이젠 좀 기억할 수 있지 않으려나.

예전에 연휴 기간에 TV 퀴즈 프로그램에서 아주 재밌는 문제가 나왔다.
"예수 탄생 장면에 등장하는 것들의 총 다리 개수는?"
이것은 마치 추석 특집 퀴즈쇼에서 '춘향전 등장인물들이 모두 손에 손을 잡고 강강술래를 한다. 팔의 개수는 몇 개?' 뭐 이런 언어수리능력을 통합적으로 체크하는 문제라고 보면 될 것이다... 그날 그 퀴즈의 정답은 생각나지 않는다. 네발 달린 동물들의 다리 개수를 더하다 보니 숫자가 계속 늘어났다는 것 정도...
사실 마가복음을 제외한 3개의 복음서에 예수 탄생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지만 후대의 말구유 묘사에 절대적인 레퍼런스가 될 만한 구체적인 설명은 없다.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양 떼를 지키더니'라는 부분이 있지만 양 떼 속에 양이 몇 마리인지는 중요하지도 않을뿐더러 알 수 없듯이... 하지만 복음서 전체를 읽다보면 잡히는 대략적인 가이드라인은 있다.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워있는 아기 예수와 그를 지켜보는 요셉과 마리아. 대천사들 그리고 베들레헴의 별을 따라 구유까지 도착하는 동방박사들과 간혹 그들이 타고 왔다는 낙타, 목자와 양, 나귀나 소 같은 조연 동물들. 그리고 베들레헴의 별.

해마다 크리스마스 연휴 시작 전 유치원에서는 예수 탄생에 관한 성극 공연이 열린다. 리투아니아의 모든 유치원에서 여는 공식 행사 같은 것은 아니고 같은 유치원에서도 그룹별로 다르다. 그냥 한 해를 마무리하는 자율적인 재롱잔치 정도로 보면 된다. 유치원에서 몇 년째 보는 이 연극의 세트도 엄밀히 말하면 프라카르텔레 Prakartėlė 를 재현하고 있다. 단지 이 연극 속 말구유의 등장인물수는 그 어떤 예수 탄생 장면보다 유동적인 게 매년 원생 수도 바뀌고 모든 원생이 전부 유치원에 오는 날은 사실 드물기 때문에.

빠르게는 2살부터 늦게는 7살까지 같은 반에서 몇 년의 시간을 함께 보낸 아이들은 한때는 늘 우는 아이 었다가 어느새 우는 아이를 달랠 수 있는 아이들로, 얼마간은 큰 아이들이 내민 발에 걸려 넘어지다가 이제는 발을 걸어 혼나는 아이들로, 손톱아래가 새까매질 때까지 모래 수로를 파던 신참이었던 아이들은 당당하게 물을 흘려보내는 건설 책임자로 자라난다.

연극에 대해 얘기하자면 막 입학했을 때 양이었던 아이들은 한동안 그렇게 기어 다니다 어느새 목동이 되어 양을 몰게 되고 좀 더 집중해서 서 있을 수 있게 되면 동방방사가 되며 좀 더 긴 대사를 소화할 수 있으면 목수 요셉이나 마리아가 되기도 한다. 연습할 때는 정말 잘했다며 본공연에서 부모 얼굴을 보자마자 우는 아이의 부모를 격려하는 선생님들은 항상 첫 공연을 올리듯 수년간 같은 내레이션을 넣는다. 공연에 등장하는 노래들은 나이 든 부모들도 따라 부를 수 있는 노래들, 큰 그림에서 보면 딱히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광경들, 하지만 짧은 인생에서 보면 너무나 큰 변화들, 죽음직전에 주마등처럼 지나간다는 삶의 순간들이 의외로 가까운 곳에서 또렷하게 연속적으로 전달되던 순간.

보통 12월 중순 크리스마스전에 하는 이 연극은 연휴 전 휘몰아친 독감으로 인해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주현절이 지나고 나서야 볼 수 있었다. 크리스마스트리도 이즈음에 정리하지만 크리스마스가 지나자마자 한동안 매일 빠짐없이 오는 눈과 강추위로 인해 그 어느 때보다 겨울 정취 가득한 1월이다. 관객들에게 주기 위해서 크리스마스 전 아이들이 손수 만든 생강 쿠키는 그대로 상자에 담긴 채 해를 전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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