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부터 보고 싶었지만 아마 제목과 포스터가 풍기는 오페라의 유령스런 느낌이 다니엘 데이 루이스로도 극복하기 힘들었는지 계속 손을 대지 못하다가 한 달 전에 보게 된 영화. 팬텀 스레드. 영화를 보는 내내 여타 폴 토마스 앤더슨 영화들을 떠올리며 감춰진 스타일의 접점을 찾으려고 꽤나 애를 썼지만 그러진 못했다. 그 이유는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대사나 표정 그리고 옷차림을 구경하는데 그저 정신이 팔려 있었기 때문에. 미국색이 팽배한 감독의 다른 영화들을 생각하니 그저 자신의 전작을 빛내준 영국인 명배우에게 헌정한 영화란 느낌마저 들었다. 나이가 들었어도 다니엘 데이 루이스는 그냥 다니엘 데이 루이스일 뿐이구나. 알 파치노만큼 나이가 들면 또 어떨지 모르겠다.
14년 전 암스테르담의 티샵에서 산 나의 첫 랍상소우총. 지금 이 틴캔은 못 통으로 쓰고 있어서 부엌을 떠난 지 오래이고 공구 가방에 들어 있는데 오랜만에 꺼내봤다. 이름만 들어도 자동 연상되는 특유의 향기 때문인지 공구상자와도 의외로 잘 어울림. 게다가 색이 예뻐서 칠이 벗겨진 각종 깡통 사탕들과 구두약 비주얼의 오래된 틴캔들 사이에서는 군계일학이다. 마트에 트와이닝스 차들은 종류별로 많지만 지금도 그때도 랍상은 없었으니 처음 본 이 이국적인 이름의 차를 덥석 집었었다.
암스테르담의 숙소로 와서 차를 끓여먹으려고 뚜껑을 열었을 때는 조금 충격이었다. 나중에야 그게 소나무 훈연향이란 것을 알게됐지만 그냥 고무 타는 냄새가 지배적이었는데 맛이 너무 진할까 봐 소량만 넣고 우렸을땐 의외로 온화한 맛이어서 놀랐다. 나중에 향기에 버금가는 쇼킹한 맛을 의도하며 잎을 왕창 넣고 우렸을땐 흡사 귀한 버섯을 우린 물 같은 비주얼이 되었지만 또 맛은 마음에 들었다. 목소리로 치면 베이스보다 훨씬 낮은 음역이고 숲으로 치면 정말 나무가 빽빽이 들어차서 햇빛이 쨍한 대낮에도 까마득히 어두운 숲 같다고 할까. 뭔가 그런 깊고 아득하고 손에 닿지 않을 것 같은 이미지로 기억하고 싶은 차이다.
그런데 이 차가 그런 이미지를 갖게 된 데에는 약간의 착각도 한몫했다. 랍상의 원산지가 무이산인데 중국의 관영방송 cctv 에는 중국 각지의 풍광들이 웅장하게 등장하는 꽤 잘 만든 관광 캠페인들이 많이 등장했고 그중 한 곳이 무이산이었으며 (목소리 좋은 성우가 또 마지막에 칼 같은 성조로 지명을 읊는다. 우ㅜ이ㅣ샨!. '우루사!' 그러는 것처럼) 와호장룡에서 장쯔이가 마지막에 몸을 던지는 무당산을 또 무이산으로 착각하는 바람에 이 차는 대나무 위에서 미동도 않는 주윤발 같은 장엄함의 끝으로 이미지 세탁이 되어버린 것. 어떤 홍차든 새로 사면 보통 레몬이나 우유를 첨가해서도 맛을 보곤 하지만 랍상만은 건드리지 못하겠다. 게다가 신경질적이고 까탈스럽기 그지없는 다니엘 데이 루이스가 마시는 랍상이라니. 그나저나 이 영화를 끝으로 은퇴하셨다고 한다. 지금 문득 생각하는데 다니엘 데이 루이스가 조금 젊었더라면 파워 오브 도그의 베네딕트 컴버배치 역이 정말 잘 어울릴 것 같음. 정말 딱이다.
런던 외곽. 엄격하고 결벽적인 의상 디자이너 레이놀즈 우드콕(다니엘 데이 루이스)이 호텔 레스토랑에 들어선다. 서빙을 하러 주방에서 나오던 여인 알마(비키 크리엡스)는 그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발을 헛디뎌 넘어질뻔한다. 멋쩍어하는 그들은 또 눈이 마주치고 볼이 발그레해져 온 홀을 돌아 주방으로 돌아가는 중에 다시 한번 눈이 마주친다. 알마와 레이놀즈는 그렇게 만난다.
홀에서 그녀가 사라진 사이 그는 참 미묘한 표정을 짓는다. 누구보다도 예민한 그는 마음속에 생긴 변화를 이내 알아차린다. 자신이 구축한 완전무결한 세계에 허락도 없이 발을 들여놓고 모습을 감춘 그녀를 이미 그리워하고 있음에 놀라고 더 이상 1분 전 그녀를 몰랐던 과거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없음에 당황한다.
주방에서 다시 나온 여인은 메모지를 들고 주문을 받기 위해 그의 테이블로 서서히 다가온다. 마치 '그'라는 대지에 생긴 모든 미세한 균열을 이미 알고 있다는 듯이. 주문지에 적힌 오늘의 날짜 이후 그의 삶이 전혀 다른 모습이 될거라는듯이. 그가 원하는 모든 것을 줄 수 있다는 듯이. 그렇다면 '배고픈 소년' 레이놀즈는 오늘 무엇이 먹고 싶을까?
알마-뭘 드시겠어요?
레이놀즈-치즈 토스트, 수란은 너무 흐물거리지 않게, 베이컨, 소시지, 스콘, 버터, 크림, 잼, 딸기 잼 말고
알마-라즈베리 잼 괜찮으세요?
레이놀즈-그리고 또 뭐 말해야 하죠?
알마-커피랑 차 중에 뭘 하시겠어요?
레이놀즈-랍상있죠? 랍상 줘요.
아침 식사에 올라온 달콤한 빵과 그의 애정과 관심을 대놓고 호소하는 한 여자를 내팽개치고 런던을 떠나온 그가 대략 2초 정도의 간격을 두고 조곤조곤 주문을 열거한다. 그가 섭씨 60도를 가리키는 온도계가 꽂힌 데운 우유를 곁들인 커피나 0.2센티미터 이내로 얇게 자르되 씨는 절대 박혀있지 않은 레몬을 곁들인 홍차를 가져다 달라는 밥맛 떨어지는 요구 했어도 별로 이상하지 않았을 거다. 수란은 너무 흐물거리지 말아야 하며 스콘에 곁들일 잼은 딸기잼만 아니면 된단다. 이쯤 되면 양호하다. 그런데 커피랑 차 중에 고르라니 굳이 콕 집어서 랍상이다.
랍상소우총은 중국 푸젠성 우이산에서 재배되는 정산소종이 그 기원이다. 정산소종의 특유의 은은한 훈연 향기가 오랜 기간 운반하는 과정에서 달아나 버리니 인위적으로 향을 더 입혀서 팔게 된 입산소종의 영어식 이름이다. 푸젠성 등지의 방언일 수도 있지만 입산소종을 광둥어 병음으로 읽으면 얼추 랍상소우총이 된다. 정산소종에 베르가못 향을 입힌 것이 또 얼그레이가 되었다고 하니 얼그레이와 랍상소우총은 어떻게 보면 그 뿌리가 같다. 아무튼 이 정산소종은 생산량이 많지 않은 고급 홍차였고 늘어나는 수요에 맞추려니 우이산 이외의 지역에서 재배되는 차에도 너도나도 송연 향을 입히기 시작한다. 급기야 향이 진하면 진할수록 상품가치가 더 높아지는 일까지 벌어졌다고 하니 유럽의 왕실은 물론 영국의 최상류 층 고객만 상대했던 특급 디자이너 레이놀즈의 홍차 취향도 조금은 납득이 간다.
랍상을 우렸을때의 주홍빛 수색은 좀 짓궂은 표현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쇳조각 주변에 연하게 번지는 중의 녹물을 연상시킨다. 그 녹물에서는 또 약간 고무 타이어 타는 듯한 냄새가 나는데 이 가학적인 향기가 딱풀 냄새나 축축한 지하실 냄새처럼 은근히 중독성이 있다. 차가 담겨있던 틴케이스에 다른 향기의 차를 아무리 담아도 랍상의 흔적이 쉽게 지워지지 않을 만큼 그의 향은 독보적이다.
식당에서 레이놀즈는 평소의 그와는 어울리지 않게 꽤나 기름진 음식들을 주문한다. 입속에 남은 바삭하게 탄 베이컨과 짭조름한 영국의 소시지와 느끼한 치즈 토스트의 맛을 말끔히 씻어내고 스콘과 시큼 달달한 라즈베리 잼으로 고상하게 옮아가려는 그에게 랍상의 개성 있는 훈연 향은 탁월한 선택이다.
사실 랍상소우총이란 차가 뭐 그리 대수라고 이 차를 즐기는 사람은 레이놀즈 말고도 당시 영국엔 차고 넘쳤을 거다. 하지만 평범한 단어들의 나열 속에서 독특한 고유 명사 하나가 빛을 발했다면 작가가 레이놀즈의 아침 메뉴에 굳이 랍상을 구겨 넣어야 했던 데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다. 어떤 취향이 얼마나 고급스럽고 독특한가를 떠나서 하나의 취향은 우리의 특질이 되고 무기가 되어 결국 권력이 될 수 있다. 그러니 레이놀즈는 그 누구와도 자신의 주물 주전자를 공유하지 않는다.
레이놀즈는 아마 어릴 때부터 그렇게 먹었나 보다. 엄마는 딸기잼이 싫은 아들을 위해 동구 밖까지 나가서 다른 잼을 사 오곤 했으며 너무 묽은 노른자를 싫어하는 아들 때문에 수십 번 수란을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반찬투정을 한다고 결코 몰아붙이지 않고 자식의 취향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사려 깊은 엄마 밑에서 자랐나 보다. 엄마를 일찍 여의고 누이와 함께 사는 지금도 누이는 웬만해선 레이놀즈와 충돌하지 않는다. 완벽주의자인 그는 항상 최고의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누구도 그 사실에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누구라도 그를 압도하는 자아를 드러내는 순간 그 균형은 처참하게 깨진다. 레이놀즈는 그런 불균형의 상태를 견딜 수 없는 사람이다.
그는 옅은 미소를 띠고 주문을 받아 적는 알마를 온 정성을 다해 쳐다본다. 레이놀즈는 주문을 기억하겠냐며 사뭇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지고 그녀에게서 주문지를 빼앗는다. 그녀와의 첫 만남이 고스란히 기록된 아침 메뉴가 적힌 쪽지를 간직하고 싶은 남자라니 로맨틱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미묘하게 퇴폐적이지 않은가. 남자는 드디어 자신의 취향이 완벽하게 구현된 아침을 함께 할 여인, 이 탐욕스러운 아침 식사처럼 그가 원하는 것은 다 줄 것 같은 여인을 만났다고 생각했을까. 음식을 주문할 뿐이며 음식을 먹는 장면은 나오지도 않지만 이 장면들은 사뭇 관능적이다. 레이놀즈와 알마 사이에 오고 간 그들만의 은밀한 대화를 엿들은 기분이 든다.
하지만 비극은 그때부터 시작된다. 그가 알마에게서 결핍된 모성애를 채우려고 했는지 모르지만 그녀 역시 자신의 세계에서 또 다른 취향의 탑을 쌓고 있는 보통의 인간일 뿐이란 것을 간과한다. 레이놀즈는 차 따르는 소리가 요란하다고 타박하고 빵 부스럭거리면서 먹는다고 다 큰 사람의 밥상머리 교육에 여념이 없는 남자이며 아스파라거스를 기름 대신 버터에 버무린 것 따위로 기분이 나빠져서 하루를 망칠 수 있는 사람이다. 자신의 취향을 검증된 특허처럼 여기는 그이지만 알마는 의외로 물러서지 않는다.
세상에 없는 것이 취향 없는 사람이겠지만 모두가 자신의 취향을 무기로 쓰진 않는다. 레이놀즈는 견고한 취향을 가진 동시에 그 취향으로 타인을 정복하고 속박하려는 기질이 다분한 사람이다. 그러니 그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선 비를 좀 맞더라도 좁고 갑갑한 그의 취향 우산 속으로 들어가는 수밖에 없다. 사실 그는 겉보기에도 꽤나 멋진 사람이다. 까다롭고 괴팍하지만 뼛속부터 예술가인 그를 조금이라도 견뎌내서 그의 사랑을 쟁취할 수 있다면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될지언정 왠지 모종의 성취감을 느낄 것 만 같은 환상을 준다. 많은 여인들이 그런 이유로 겨우겨우 버티지만 결국은 그를 이겨내지 못하고 떠난다. 하지만 알마는 좀 다르다. 알마는 레이놀즈의 우산 아래에 꿋꿋이 남아서 그와 함께 우산을 거머쥐고 당당히 빗속을 걷는다.
알마는 레이놀즈의 취향을 최대한 존중한다. 하지만 자신이 원할 때는 자신의 원칙을 내세우는 것에도 주저하지 않는다. 상대를 못 견뎌하는 대신 타인에게도 자신을 견뎌줄 것을 당당하게 요구하며 레이놀즈와의 관계에서의 지분을 조금씩 넓혀간다. 알마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으로 레이놀즈를 사랑하고 지배하고 굴복시키고 싶다.
레이놀즈의 강박적 성향으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입고 고통받고 있는 사람은 사실 레이놀즈 그 자신이다. 알마는 그런 고통으로부터 그를 해방시킬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자신이라고 생각하고 그를 구원하겠다는 계획을 세운다. 숲 속에서 채집한 독버섯을 잘게 다져 그의 차에 섞는다. 죽지 않을 만큼의 독버섯을 먹고 병들어 신음하는 레이놀즈 앞에는 죽은 엄마의 형상이 나타나고 알마는 어린아이가 돼버린 그를 극진히 간호한다. 레이놀즈는 나중에 독버섯의 존재를 알게 되지만 음식에 버섯을 섞는 알마를 그냥 내버려 둔다. 레이놀즈는 자신의 취향과 고집, 자신을 옭아매고 있는 모든 강박과 욕망에서 곧 자유로워질 것임을 기대하며 요리하는 알마의 뒷모습을 그저 응시한다. 그리고 순순히 독버섯이 든 오믈렛을 삼킨다.
레이놀즈의 고상한 랍상이 알마의 독버섯을 만나면서 그들 사이의 팽팽했던 균형은 깨진다. 레이놀즈는 독버섯을 먹고 나서야 타인은 물론 자신을 구속하는 취향과 원칙이라는 독으로부터 구원받는다. 랍상차를 마실 때마다 늘 레이놀즈와 알마를 생각하며 나의 어떤 악습 혹은 규율을 떠올려본다. 누군가는 지금도 나의 어떤 고약한 성향과 취향을 이겨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우리는 누군가에게 많이 견뎌지고 이해받고 사랑받고 있는 중이라는 것, 그런 생각과 타협이 되었기 때문에 레이놀즈는 알마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알마의 버섯을 서서히 삼킬 수 있었다. 그러니 순간순간 고집스러운 염소뿔이 삐져나오기 직전에 정신 차려야한다. 우리는 여러모로 감사해야 하지 않을까. 아직 아무도 고약한 우리에게 독버섯을 먹일 생각을 하지 않은 것과 독버섯을 먹여서라도 무너뜨리고 싶은 고집스럽고 불편한 파트너를 가지지 않았다는 그 두 사실에.
알마가 온전히 레이놀즈를 증오하는 감정으로 충만했고 그런 알마를 견딜 수 없는 레이놀즈였다면 이 장면은 의자에 밧줄로 그를 묶어놓고 꽉 다문 입을 벌려 버섯을 욱여넣는 식이 되었을 거다. 그랬다면 아마 집착을 사랑이라고 착각하던 미저리 같은 공포 영화가 되었겠지만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알마를 향한 믿음과 사랑, 이제는 좀 편해지고 싶은 간절한 욕망으로 독버섯을 씹는 레이놀즈의 모습은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 평화로워 보인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독버섯을 먹이는 이 러브 스토리가 한편으론 기괴하지만 충분히 로맨틱한 이유이다. 레이놀즈와 알마의 첫 만남을 회상하며 그들의 풍성했던 영국식 아침을 조만간 차려먹어야겠다. 랍상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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