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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니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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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lnius 86_장터 풍경 매 월 3월 첫째주 금요일에 열리는 카지우코 장날. 11년 전, 첫 장터에서 받은 인상이 참 강렬했다. 특별한 계획없이 그냥 지나치기 아쉬워 들러가는 어떤 여행지에서 1년에 한 번 열리는 아주 큰 행사에 엉겁결에 빨려 들어가서는 뜻하지 않았음에도 마치 의도한 것 처럼 가슴 속에 큰 의미를 지니게 되는 그런 기분이랄까. 그 기분을 다시 느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올 해도 습관적으로 발길을 옮겼다. 사실 해가 더 할수록 뭔가 규모는 커지지만 별로 새로울 것이 없다. 하지만 이제 별로 재미없다 하고 돌아선다면 좀 쓸쓸한 마음이 들것 같아 최대한 처음 그 기분을 되새김질하며 걷는다. 가끔은 지난 해에 망설이다 결국 사지 않은 것들이 올 해에도 있으면 살까 하고 생각한다. 얇게 잘라 빵에 얹어 먹으면 스르르 녹..
Vilnius 84_옛 주차장 구청사에서 새벽의 문을 향하는 짧은 길목. 이곳은 종파가 다른 여러 개의 성당이 밀집해 있는 곳이다. 러시아 정교와 카톨릭 성당, 우크라이나 정교 성당을 등지고 섰을때 보이는 볼록 솟아오른 쿠폴은 바로크 양식의 카톨릭 성당이지만 화려한 제단을 제외하고는 이렇다 할 내부 장식이 남아있지 않은 성 카시미르 성당의 것이다. 제정 러시아 시절에 러시아 정교 성당으로 바뀌며 양파돔이 얹어지고 내부의 화려한 바로크 장식을 걷어내야 했던 이 성당은 소비에트 연방시절엔 급기야 무신론 박물관으로 쓰여지기도 했다. 평범한 건물도 세월이 흐르면서 소유주가 바뀌고 상점으로 쓰였다가 여관이 되기도 하고 카페가 되는 것이 특이한 일이 아니듯 점령자의 필요에 의해 때로는 와인창고가 되고 원정에 나선 군대의 병영으로 쓰여졌던 교회의..
Vilnius 83_카페 풍경 요즈음 빌니우스 거리 곳곳에서 마주치는 캠페인. 펄펄 끓는 커피 포트나 다리미, 떨어져서 깨지기 직전의 도자기들을 배경으로 폭발 일보 직전의 자신을 뒤돌아보라는 메세지를 담고 있다. 커피 포트가 뿜어내는 연기가 불안감을 주긴 하지만 어쨌든 새로 문을 연 카페의 오렌지색 간판 때문에라도 구시가의 어떤 장소보다 이곳에 가장 잘 어울린다. 이곳은 내가 좋아하는 거리, 행인들이 안겨주고 가는 꽃다발로 한시도 외로울 틈 없는 로맹 개리의 동상과 러시아 드라마 씨어터가 자리잡은 바사나비치우스 거리이다. 문화부나 리투아니아 철도청 같은 주요 관공서들이 유서 깊은 건물들에 터를 잡은 꽤나 진지하고 격조있는 거리인데 이곳에서 아래로 이어지는 몇몇의 거리들을 통해 곧장 빌니우스 대학과 대통령궁, 대성당까지 닿을 수 있음에..
Vilnius 82_창 밖 풍경 병원 복도를 무심코 지나치다 다시 되돌아가서 마주선 풍경. 새롭게 생긴 창이 아닐텐데 항상 그 자리에 있었을 굴뚝과 건물의 능선들을 이제서야 알아본 것이 조금 미안하게 느껴졌다. 주홍 지붕을 감싸안은 하얀 눈과 겨울 아침 특유의 잿빛 하늘이 간신히 포섭해 놓은 성 카시미르 성당의 쿠폴. 매년 3월의 첫 금요일, 구시가 곳곳에서는 성 카시미르의 축일을 기념하는 큰 장이 열린다. 성당의 쿠폴속으로 아낌없이 쏟아지던 어느 해 장날 아침의 하얀 햇살이 기억난다.
Vilnius 81_겨울을 향해 짙어지는 것 두가지. 어둠과 빛. 아직 밝은 가운데에서도 짙게 느껴지는 빛. 어두운 낮의 계절이 온다.
Vilnius 80_너, 그 자체. 늘상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좀 더 스스로에게 귀를 기울일때 아름다워지는 것. 도시도 예외는 아니겠지. 그랬으면.
Vilnius 79_계절의 정문 Vilnius_2018초대받지 못한 손님처럼 문 근처에서 들어갈까말까 서성이고있는데 어디서 쏟아나왔는지도 모르는 갑작스런 인파에 밀려 엉겁결에 빨려들어가고 마는 어떤 계절의 초입.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너른 공간 한 가운데에 뚝 떨어져 서성이는 순간은 오히려 온화하다. 빠져나올때쯤은 오히려 아쉽다. 겨울은 항상 그렇다. 더 이상의 새 손님 맞이를 사양한채 꽝 닫혀진 겨울은 오히려 따사롭다. 지금이 가장 춥다. 열려있는 곧은 문이, 한 발짝 들이기만 하면 되는 그 문이 가장 커 보이고 가장 차갑다. 이른 아침 대성당 근처를 걸었다. 못보던 국수집이 보였다. 이제 이곳 사람들도 겨울의 국물과 조금씩 친해지려나보다.
에스프레소 스타우트 2년 전에 뭘했지? 하고 심심해서 찾아보니. 이걸 마셨다. 마트에서 쉽게 살 수 있는 일본 맥주인 뚱뚱보 히타치노 네스트. 맥주병도 도톰하니 단연 귀엽고 스타우트라는 어둠의 맥주에 커피계의 어둠, 에스프레소가 첨가되다니 좀 멋있다고 생각하며 마셨다. 맛은 둘째치고 정말 자알 만들었다는 느낌을 주는 맥주. 여자한테 잘생겼다는 말하고 싶을때. 그런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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