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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니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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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lnius 110_1월의 아침 1월6일 오늘은 12월 24일부터 시작된 크리스마스 기간이 상징적으로 끝나는 날로 예수 탄생을 축하하러 찾아 온 3인의 동방박사를 기념하는 날이기도 하다. 리투아니아의 가정집 현관문에 종종 K+M+B 라고 적힌 것을 발견할 수 있는데 처음에는 그것이 방을 의미하는 'Kambarys'의 줄임말인줄 알았다. 절묘하게도 같은 알파벳 세개가 들어가니 막 리투아니아어를 배우기 시작하던 나에게 가장 기본단어중 하나였던 그 단어가 자연스레 뇌리에 꽂힌것이다. 하지만 이 알파벳들은 각각의 동방박사를 뜻하는 Kasparas, Baltazaras, Merkelis 를 뜻한다. 카스파르, 발타자르, 멜키오르의 리투아니아 식 표현이다. 이들 이름의 약자를 1월 6일 대문에 다시 한 번 적는것으로 한 해의 안녕과 행복을 기원하..
10월의 토닉 에스프레소 빌니우스는 사실 그다지 작지 않지만 중앙역과 공항이 구시가에서 워낙 가까워서 구시가만 둘러보고 돌아가는 대부분의 여행객들에겐 작고 아담하다는 인상을 준다. 중앙역에 내려 배낭을 매고 호스텔이 있던 우주피스의 언덕을 오르던 때가 떠오른다. 한때는 꾹꾹 눌러쓴 연필자국처럼 짙고 선명했던 여행의 많은 부분들은 이제 서너장 넘긴 공책 위에 남은 연필의 흔적처럼 희미하지만 그럼에도 역에 내려 처음 옮기는 발걸음과 첫 이동 루트는 한 칸 들여쓰는 일기의 시작처럼 설레이고 선명하다. 몇 일 집을 떠나 머물었던 동네는 공항가는 버스가 지나는 곳이었다. 낮동안 오히려 더 분주하게 날아다녔을 비행기이지만 막 이륙한 비행기인지 착륙을 시도하는 비행기인지 그들이 내뿜는 굉음이 오히려 밤이 되어 한껏 더 자유분방해진채로 어둠을..
Vilnius 101 아주 어렴풋하지만 자주 보는 장면이니 사실 정말 거의 안 보여도 나로서는 그냥 다 보인다고 생각되어지는. 이 정도 위치가 빌니우스로 여행을 오는 사람이라면 보통 들르는 세 장소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맨 앞의 대성당 종탑과 대성당. 대성당 지붕 위로 굴뚝처럼 솟아 있는 벽돌색 게디미나스 성과 그로부터 오른쪽으로 펼쳐진 숲 속 가운데에 하얀 세 개의 십자가가 세워져 있다. 여기저기 전부 관광객이라 걷다보면 그냥 나도 관광객모드가 된다. 음악 소리는 기본이지만 그 음악 소리를 뚫고 나오는 것이 노천 식당의 칼질하는 소리. 냉장고에 맥주병 채워 넣는 소리이다. 그리고 뭔가 냉동 감자, 야채, 생선볼 같은 것 튀긴 냄새도 자주나는 것 같다.
Vilnius 95_모든 성자들의 성당 놀이터 벤치에 앉아서 고개를 돌려 위를 보았을때 마주치는 풍경. 이 나무들 밑으로 여러번 비를 피했었는데 우르르쾅쾅 비가 올 조짐을 보였지만 큰 바람이 불고도 어제는 비가 오지 않았다. 따뜻한 기온이 어느정도 자리를 잡았다. 올해의 첫 수박을 먹었다. 성당 안의 공기가 가장 차갑고 청명하게 느껴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놀이터 모래 상자 속에서 모래 바람이 불어 온다. 누군가에게는 맨발 시즌이다.
Vilnius 91_오늘 아침 노란 창문이 박힌 벽에 뚫린 그 '어떤 대문'을 지나면 이런 풍경이 나온다. 오늘 아침에 이 곳을 지나왔다. 이제는 새벽 6시 정도만 되면 자명종처럼 새가 지저귄다. 어쩌면 그보다 이른 시간인지도 모르겠다. 다시 잘까 깨어있을까를 생각하다 보면 30분 정도가 흐른다. 그러다 잠시 잠이 들면 건너편 건물에 반사되어 들어오는 햇살이 7시 정도를 알린다. 저 나무 뒤로는 정오가 지나면 아주 강한 햇살이 고인다. 하지만 12도 남짓으로 조금은 쌀쌀해서 아직은 옷을 여미고 스카프를 둘러야 하는 이런 아침이 결국 가장 좋다.
Vilnius 90 내가 아는 가장 정다운 노란 창문이다라고 말하고 싶다가도 빌니우스 어딘가에 또 내가 모르는 노란 창문이 있을 수도 있을까? 생각한다. 이제는 도서관이 수리를 해서 더이상 삐그덕거리는 마룻바닥을 걸을 일이 없지만 예전에는 그 마루 위를 조심조심 걷다가 창 밖으로 눈을 돌리면 항상 저 창문을 마주치곤 했다. 최고 기온이 18도까지 올라갔지만 나는 여전히 춥다. 개나리인지는 모르겠지만 이곳에도 가장 부지런한 꽃덤불은 노랑이다. 가로수 아래로 파릇파릇 새싹이 돋는 것도 보인다. 곧 민들레도 나타나겠지. 밤나무에도 꽃봉우리가 올라왔다. 그러고나면 라일락이다.
Vilnius 89_어떤 대문 빌니우스 구시가에도 곳곳에 지름길이 있다. 모르는 건물의 중정을 용감이 들어섰을때, 질퍽한 진흙길에 신발을 망가뜨릴 것을 감수하고 변변한 조명 하나 없는 컴컴한 남의 마당에 들어갔다 되돌아 나오는 수고를 귀찮아 하지 않을때 비로소 찾아지는 것들. 그들만의 통로. 구시가의 아도마스 미츠케비치우스 도서관과 리투아니아 영화 박물관 마당을 구분하고 있는 이 문은 사실 숨어있다고 하기에도 너무나 장엄하지만 멀리 저만치 떨어져있는 두 성당을 게임 속 포털처럼 연결해주는 문이다. 조금 빨리 집에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때 항상 저 성당을 등지고 이 문이 열렸나 확인한다.
Vilnius 87_대성당과 종탑 누군가의 커피잔을 옆으로 밀어내고 잠시 앉아가는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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