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구 자두 하이브리드
마트에 새로 등장하는 과일이나 식품들은 보통은 비싸다. 하지만 할인 스티커가 붙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다시 등장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마트의 판촉 상품으로 등장하는 그들은 그런데 보통은 또 매력적이다. 12색 기본 물감 팔레트에는 없지만 36가지 색 크레파스에는 고고하게 꽂혀있는 그런 색다른 빛깔을 담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어쩌면 새로운 것 그리고 다른 것보다 조금 값비싼것들에 으례 덧씌워진 환상이나 허황같은것일 수도 있다. 그것은 수입 담당 직원에게 가해진 끼워팔기의 강매였을수도 있고 다 식은 커피와 함께 유통기한이 지난 마트의 도넛을 먹으며 식품 카탈로그를 보다 혹해서 주문 버튼을 눌러버린 그의 모험일 수도 있다. 설사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아 할인의 할인을 거듭한 딱지가 덕지덕지 붙여진다고 해도 그것은 피라미드처럼 쌓인 사과보다 더 큰 마진을 남길 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우리는 여러 경로로 새로운것을 접한다. 대개 그런것들은 다수의 설득을 얻든 그렇지 못하든간에 커다란 인상을 남긴다. 싫음 당할 용기를 가지고 있는것들, 커피를 머금은 휘핑 크림에 파프리카 가루를 뿌리겠다는 생각을 우리가 무슨 수로 저지 할 수 있단 말인가. 얼마전에 마트에서 눈에 들어온 것은 자두와 살구의 하이브리드 과일이었다. 자두도 살구도 특별히 좋아하지 않는데 이들은 사실 이제는 별로 새로울것도 없는 망고와 마트 벽지의 지위를 획득한 노란 바나나 사이에서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자주먹는 과일들에 비해서 두배나 비쌌지만 살구자두를 한개 집어 들었다. 먼 훗날 중앙아시아를 여행하다 살구자두 개발자를 만날지도 모르는 일이다. 킬로그램당 2.5유로면 한 알이면 50센트 정도일거다. 이것을 다섯개들이로 포장해서 3.99유로 가격표를 붙여 보장된 수익을 얻을 수도 있겠으나 대체적으로 이곳엔 그것을 포장하고 바코드를 찍어 붙이는 노동력이 부족한법이다. 리투아니아에선 대부분의 식품들을 직접 담아 낱개로 살 수 있다. 껍질이 벗겨진 호두도 다섯개만 살 수 있다는것은 나같은 인색한 소비자로썬 참 흐뭇한 일이다.
나름 단단했던 살구자두는 예상보다 달았다. 한 조각 먹어보고는 나머지는 배추가 너무 쌉싸름해서 샐러드에 넣었다. 종종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말을 거는 마트의 아저씨 직원이 있다. 언젠가 그가 컨베이어 벨트에 식료품을 늘어놓던 나에게 국적을 물은적이 있다. 그는 집 앞 마트의 직원들 중 가장 서두르지 않는 직원이기도하다. 물건을 바코드 인식창에 얹어 놓는것에도 나름의 규칙이 있어서 내가 장바구니에 집어넣을 무거운 순서대로 물건을 벨트위에 올려놓아도 간혹 제일 멀리 있는 물건을 집기도 한다. 나는 낯선 언어의 불규칙 변형을 숙지하듯 그의 순서대로 물건을 놔줄까 몇번 고민했지만 결국 그 행위 사이에서 이렇다할 규칙을 발견하진 못했다. 그날 그는 살구자두 하이브리드 과일을 오랫동안 쳐다보았다. '이게 그 자두살구 하이브리드인거죠?' 라는 말을 내뱉고 수첩을 넘기더니 수첩과 스크린을 번갈아 쳐다보며 띄엄띄엄 코드를 입력했다. 이런 신상품들은 매번 새로운 코드를 암기해서 입력해야 하는 직원들에게는 귀찮은 존재일것이다. 그 순간 그 코드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배려라면 수첩속에서 아직은 깨끗하고 빳빳한 맨 마지막 페이지에 위치하고 있는것이다. 살구자두를 사는 사람들이 많으면 코드는 자연스레 외워지게 될꺼다. 2주정도 지났는데 이 과일 여전히 마트에 팔고 있다. 아저씨가 코드를 외웠는지 며칠 후에 또 사먹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