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보다 낯선> 헝가리안 굴라쉬
내가 정말 잘하고 싶은 요리가 있다면 헝가리안 굴라쉬.
단순한 요리 그 이상의 실험 대상이고 남의 나라 음식인데 나의 소울 푸드였으면 좋겠다.
인터넷에서 못보던 레시피를 발견할때마다 거의 적용해보는 편인데
헝가리에서 일주일을 싸돌아 다녔음에도 굴라쉬를 먹어보지 않은것은 아쉽다.
언젠가 헝가리에 다시 가서 굴라쉬를 맛보게 됐을때에 예상되는 결과는 두가지이다.
내가 만들어 먹은 수십그릇의 굴라쉬와는 너무나 다른 오리지널 굴라쉬의 신세계에 뒤통수를 맞거나
그냥 마트의 굴라쉬 페이스트를 짜 넣어 만든것 같은 스탠다드한 관광객용 굴라쉬에 실망을 하거나이다.
굴라쉬가 왠지 헝가리의 지독히도 평범한 가정식 같아서 식당에선 오히려 제대로 된 굴라쉬는 먹을 수 없을것 같은 노파심.
하지만 오리지널이든 스탠다드든 그 기준은 내가 만들어 먹던 굴라쉬가 될테니 사실은 엄청난 모순이다.
반년의 유럽 여행을 계획했지만 유럽 여러 개국이 추려진 론니 대신 일주일 예정의 헝가리 론니를 샀던것은
게다가 아마존에서 테잎이 딸린 헝가리어 교본까지 주문했던 이유는
그만큼 <천국보다 낯선>의 헝가리 이민자인 윌리와 에바를 영화 주인공 이상으로 너무 좋아했기 때문이다.
십년만에 만난 조카 윌리에게 롯데 숙모가 대접하는 롯데 숙모의 소울이 담긴 그런 굴라쉬를 먹어 보고 싶다.
영어하는 윌리에게 '땡큐, 꿰쎄넴' 고집스럽게 영어와 헝가리어를 섞어쓰는 롯데 숙모도 너무 사랑스럽다.
날이 더워졌는데 뜨거운 스프가 먹고 싶어진다는것은 아이러니하다.
언젠가 소고기 손질하고 남은 찌꺼기에서 우려낸 진한 육수가 냉장고에 자리잡고 있었기때문이다.
덕분에 <천국보다 낯선>을 오랜만에 다시 보았다.
롯데 숙모가 예고도 없이 들이닥친 윌리와 에디를 위해 급하게 굴라쉬를 끓인것은 아닐꺼다.
굴라쉬 같은 미트 스튜를 그렇게 단 시간내에 만들 수는 없는 법이니깐.
롯데 숙모는 에바와 함께 먹을 어제 오늘 내일 먹어도 질리 않는 국민 스튜 한 솥을 아주 넉넉하게 끓여놓고
티비를 보고 있었던 거다. 누가 오더라도 바로 떠다 대접할 수 있는.
가만히 보면 굴라쉬는 한국 정서에 너무 잘 맞는 요리가 아닌가.
떠먹을 국물도 충분하고 얼큰하고 밥에도 잘 어울리니깐.
굳이 퓨전이라는 이름을 달지 않아도 맛있게 먹을 수 있는데 아마 오히려 그런 이유로 한국에선 별로 인기가 없는것 같다.
전혜린의 수필에서 매운 굴라쉬를 언급하는 부분이 있다.
떨어지는 나뭇잎과 절망과 스산한 바람 얘기만 할 것 같았던 아슬아슬한 그녀의 글에서
갑작스런 음식 얘기에 놀랐던 기억이 난다.
그녀가 적어 놓은 굴라쉬의 얼큰함은 한국에 대한 향수였을까. 아니면 반대로 귀국후에 느낀 독일에 대한 향수였을까.
아 그러고보니 그녀가 독일에서 맛본 헝가리안 굴라쉬를 생각하니 갑자기 또 <글루미 선데이>가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