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투아니아어 119_당절임과일 Cukatos
이 색감은 가히 팬톤의 올해의 색상 담당 부서직원들이 철야를 해도 구현해 낼 수 없을 영롱함과 말끔함이다. 초록 자몽을 좋아하는데 아쉽게도 잘 안 판다. 껍질 두께도 적당하고 포멜로와 주홍 자몽의 바람직함만 딱 섞어놓은 맛이다. 오랜만에 눈에 띄어 설탕에 절이려고 비슷한 놈들을 하나씩 전부 들고 왔던 어떤 겨울날. 여러색을 섞으면 훨씬 예쁘고 맛있다.
설탕물에 끓여서 굳힌 과일 껍질이나 과육들을 가리켜 리투아니아에서는 쭈카토스(Cukatos)라고 부른다. 절인 귤류의 껍질이면 간혹 캔디드 필 Cukuruotos žievelės라고도 쓰지만 쭈카토스라고 하면 대체로 통한다.
특히 겨울이 되면 su cukatomis라는 설명이 붙은 빵들이 많이 나온다. su는 '~와 함께', '~ 을 포함한'에 쓰이는 5 격 전치사이다. 쭈카토스를 잘게 썰어서 다시 브랜디 같은 술에 푹 절여놨다가 반죽과 함께 치대는 파운드 케이크 형태의 과일 케이크들은 오래 두고 먹을 수 있으니 리투아니아의 겨울 민속 장터에 가면 차갑게 언 상태로 늘 등장한다. 자른 단면에는 각양각색의 쭈카토스들이 반짝반짝 거린다.
이 단어는 처음 접했을 때부터 유난히 장난스럽고 생뚱맞은 어감에 계속 낯설었는데 결정적으로 이것이 단어 Citatos (인용) 나 Cikados(매미) 와도 비슷해서 인용된 벌레 같은 이 단어가 자꾸 음식 이름에 등장하니 그 이질감에 입에 잘 붙지 않았던 것도 같다.
찾아보니 이런 당절임과일 들을 succade로 부르기도 한단다. 리투아니아어 Cukatos는 아마 이 단어에서 유래된듯하다.
그리하여 쭈카토스를 카페에 들고 가서 불량식품처럼 먹으며 책을 읽었던 어떤 겨울날을 떠올려본다. 이런 경우 서로 읽는 문장에 대한 폭주하는 수다와 감상들로 읽어내는 책의 페이지수는 결과적으로 두세 쪽을 넘기지 못하지만 문장 그 자체보다 진하게 남는 생생한 대화들이 있다. 어떤 작가의 그리스 여행기로부터 그리스의 열기와 마른 먼지가 책을 뚫고 나왔다. 내 뒤로는 커피가 고픈 사람들이 겨울바람을 가득 품은 코트 자락을 펄럭이며 지속적으로 등장했다. 찬 기운에 정신을 빼앗겼다 읽었던 자리를 더듬더듬 찾아가 덥고 눈부신 단어 하나를 발견하면 카페의 공기가 놀랍게도 적당히 미지근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