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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fe

어떤 카페, 어떤 예술가



홍대의 명월관 바로 옆에 위치해있던 어떤 카페. 한창 피씨통신을 하던 학창시절, 이십대 후반의 직장인 언니 오빠들이 핫플레이스라며 정모 장소의 후보로 올리던 곳, 그곳이 20여년이 훌쩍 지났음에도 아직 남아 있었다. 하지만 이 카페의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뭔가 빌니우스다워서 익숙했고 따로 설탕을 털어 넣지 않은 라떼가 적당히 달고 맛있었다. 다 마시고 난 커피잔에 우유 거품이 그득그득 남지도 않았다. 신기하고도 훌륭한 라떼였다. 이 카페에 다시 가면 그때는 카페 이름을 마음 속에서 두 세 번 되내어 보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때까지도 그 자리에서 같은 라떼를 만들어 준다면 말이다. 폐간된 잡지인지 그냥 주인장 소장용 잡지를 카페에 가져다 놓은 것인지 이미 이 삼 년은 족히 지난 오래된 잡지들이 카페 입구를 차지하고 있었다. 손님들이 들어설 때마다 잡지 진열대 사이로 거칠고 휑한 바람이 들이 닥쳤다. 이들은 읽히는 것 보다 꽂혀있는 편이 낫다는 나른한 표정으로 제발 문이나 좀 빨리 닫아 줄래 라고 말하는 듯했다. 잡지 속의 인물들은 지루함에 몸둘바를 몰랐다. 잡지를 덮었다 열때마다 정신없는 탈의실을 뛰쳐나와 매끈한 런웨이로 고급스럽게 미끄러지는 모델들이 안도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좀 더 시크해지지 못해 안달이 난 그들 틈에 갑작스레 나타난 글렌 굴드의 사진 한 장. 



이 사진은 꽤나 유명한 현장을 담은 사진이겠지. 글렌 굴드의 다큐멘터리에서도 스쳐지나가는 이 사진을 본 적이 있다. 따사롭고 낭만적이고 고독하다. 저 핸드 워머에서 빠져나온 손가락이 만들어낸 피아노 선율과 그 특유의 허밍이 들리는 듯하다. 굴드의 연주를 녹음한 많은 엔지니어들이 그의 허밍소리 때문에 애를 먹었다는 사실은 유명하다. 그의 연주 멜로디 그 자체에 철저히 압도당했다고 말할 수 있는 청중이 과연 얼마나 될까. 피아노 소리에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그의 독특한 표정과 움직임을 더욱 기괴한 경지로 이끌어가던 그의 허밍. 그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그것은 그의 상징이 되었다. 촬영 조명도 협찬 의상도 인공의 표정도 꾸며낼 수 없는 무한히 자유로운 모습이다. 그것은 대중이 좇는 예술가의 비주얼이라기보다는 어떤 예술가의 정신 그 자체로 남아야 했겠지만 심지어 반세기 이전의 사회에서도 그건 그리 호락호락한 일이 아니었을 거다. 전적으로 그의 연주 테크닉과 남다른 해석력에 마음을 빼앗겼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나 조차도 글렌 굴드의 모습에서 유약해 보임과 동시에 남성적이었던 제프 버클리와 크리스쳔 베일이 연기한 아메리칸 사이코의 결벽과 차가움을 보았고 그것에 매력을 느끼고 그의 연주를 듣기 시작했다고 하는 편이 솔직하다. 결국 굴드는 그 자신의 모든 외적인 것에 집착하는 나를 포함한 어떤 청중들과 그것을 더 왜곡하는 미디어와 위선의 연주 공간을 미련없이 떠났고 많은 이들이 기억하는 클래식 피아니스트가 아닌 전방위 예술가로 남기를 원했다. 이 사진을 찍는데 잡지를 무엇으로도 고정할 수가 없어서 애를 먹었다. 커피잔으로 고정시키자니 잡지가 라떼로 물들 위험해 처했고 팔꿈치로 고정하고 찍으려니 제대로 된 각도가 나오지 않았다. 기껏 찍어낸 사진들엔 빛이 고였다. 인터넷 어딘가에는 어쩌면 비슷한 이미지가 떠돌아 다닐 테고 그것을 취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우연히 들어간 카페에서 무심코 펼친 잡지에서 만난 소위 알고 있다는 예술가의 모습에서 일종의 공감과 내밀한 연결감을 느꼈던 것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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