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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fe

빌니우스 카페_Bulkinė



교회와 같은 종교 건축을 제외하고 나면 보통 도시의 가장 오래 된 건물들은 중앙역 같은 공공 건물들인 경우가 많은데 집에서 멀지 않은 빌니우스의 중앙역은 2차 세계 대전때 심하게 훼손되어 전후 다시 재건축된 케이스라 별로 유서 깊은 느낌을 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세계 대전 이전에 지어진 이 대형 아파트가 더 견고한 느낌을 준다. 이 건물은 1911년에 지어졌다.  이 건물을 좋아한다. 집으로 가는 도중 대부분의 경우 마주치는 동네의 터줏대감 같은 건물이기도 하고 가장 친숙하게 드나드는 동네 빵집이 바로 건물의 1층 모서리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4년전 빵집이 생겼을때 정말 환호했었다. 



두 개의 횡단보도 사이를 거의 꽉 채우고 있는 이 건물.  다른 유럽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빌니우스에서도 거리에서 바라보는 건물의 모습과 중정으로 들어서서 체감하는 공간은 확연히 다르다. 이 건물이 워낙에 큰 면적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건물의 마당으로 들어서면 그 마당 주위로도 굉장히 여러채의 건물들이 겹겹히 들어서 있어서 시대별로 지어진 각기 다른 스타일의 아파트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똑같은 높이의 건물이어도 몇층으로 구성되어 있는지를 보면 굳이 무엇으로 지어졌는지 어떤 건축 스타일인지를 눈여겨 보지 않아도 대략 건축 연도를 가늠할 수 있다. 이 건물은 1층 상가까지 합해서 6층으로 지어졌는데 같은 높이의 건물을 지금 짓는 다면 대략 8층 정도의 건물이 될거다. 인구 자체도 많이 늘어났겠지만 좀 더 많은 집을 꼬깃꼬깃 집어 넣어서 비싼 값에 팔아야 건축 업자의 타산이 맞을 테니. 오래된 집들은 그래서 그만큼 천장이 높고 그러니 자연스레 창문이 길어지고 큼직해지니 고풍스러운 느낌을 줄 수 밖에 없다. 게다가 이 건물은 100년전에 지어진 건물치고는 높은 축에 속해서 흔치 않게 엘리베이터가 있다. 



흐린 날이든 해가 짱짱한 날이든 저 양파돔은 항상 우월하다. 석양이 돔의 표면에 드리워지기도 하고 돔의 색깔과 거의 유사한 하늘이 그를 에워싸기도 한다. 만약 이 즈음에서 길을 잃고 서성이고 고개를 들어 그를 마주한다면 손안에 나침반을 지니고 있는 것과 같다. 이 건물을 지은 건축가의 집도 구시가지에 아직 남아 있다. 



그리하여 빵집이 보인다. 이 건물이야 나름 유명한 건축가가 지어서 건물 표면에 건축 연도가 적혀있지만 아마도 더 오래된 건물은 건너편의 이 벽돌 건물일 가능성이 높다.  거리 전체가 내려다 보이는 저런 발코니와 벽돌로 지은 건물인데 건물 데코까지 벽돌을 잘라서 했다면 일부러 옛날 건물처럼 만들려고 하는 요즘 건물이 아니고서야 정말 오래된 건물이다. 저 빵집 자리가 아주 오래전에는 약국이었다는데 그 약국에서 쓰여졌던 가구들이 카우나스의 의료 약학 박물관에 남아 있다고 한다. 빵집에 들어가서 철제 의자에 앉을때마다 그 가구들을 보러 카우나스에 가고 싶다고 생각한다.



가장 자주 앉는 자리에서 밖으로 내다 보이는 벽화 (http://ashland11.com/263)



반대쪽 창문 밖으로 보이는 오래된 벽돌 건물. 1층에는 꿀을 판다. 병을 들고 가면 꿀을 담아 준다.  



빵집 이름 Bulkinė.  리투아니아에서 먹는 빵을 간단하게 흑빵과 하얀빵으로 나눈다면 흑빵은 러시아의 흘렙과 같은 빵이고 하얀빵은 일반적으로 부드러운 밀가루 빵. Bulka 는 공식적으로는 잘 사용하지 않는 단어지만 대략 그런 빵들의 총칭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명칭에 장소형 어미를 붙인 것이 이 빵집의 이름이다. 빵집이라는 이름의 빵집이라고 보면 된다. 이곳 역시 주문 제작을 하는 빵집이고 빵을 직접 만들지는 않는 레스토랑이나 카페에 빵을 파는 빵집인데 그래서 커피보다는 빵과 케익에 주력하는 맛있는 케익과 빵이 비싸지 않은 단골이 많은 곳이다. 중앙역에서 나와 호스텔이나 저렴한 호텔로 가는 길목에 있어서 외국인도 많고 특유의 넉넉하고 편안한 분위기가 있다. , 일요일에는 빵을 굽지 않아서 맛있는 빵들이 거의 없다



그래서 이 자리에 앉으면 항상 신호를 기다리는 차량과 행인들 군침돌게 하는 레시피들이 적인 요리책들이 많이 있다. 4년 전에 이 빵집에 가장 처음 간 날이 워낙에 흐리고 비가 오던 날이여서 한 동안 그런 비슷한 날씨일때에만 이 빵집에 갔는데 요즈음에는 날씨와는 상관없이 아무때나 간다. 따뜻한 식사류나 주류를 팔지는 않지만 이를테면 이곳은 나에게 베를린 카페 주커 베이비 같은 느낌이다. (http://ashland.tistory.com/678)



방석이 딸린 철제 의자들이 놓여진 야외용 테이블이 4개 있다. 이제 이곳의 거의 모든 케익과 빵을 먹어봐서 전보다 덜 재밌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가장 편안한 마음으로 갈 수 있는 곳



말발굽 모양의 동전 받침대(?)와 이들의 팁 상자에는 '몰디브 여행을 위해' 라는 깜찍한 문구가 적혀 있다. 이곳은 부담스러운 친절을 베풀지 않는, 지나치는 길에 창문 너머로 눈인사 할 수 있는, 일하는 이와 손님 사이가 매우 정겨운 동네 빵집이다. 팁이라고 해서 거창한 것이 아닐 것이고 거스름 돈을 주면 그냥 일부는 말발굽 위에 남겨 놓거나 케익과 커피가 너무 맛있었다면 커피잔 받침 위나 냅킨 위에 미소를 그리고 동전을 올려 놓으면 되는 것이다. 자리를 잡고 앉으면 커피와 빵을 가져다 주지만 직원 혼자서 일하는 구조라서 접시에 담아줄때 하나하나 테이블로 직접 옮기고 보통 커피를 기다리게 되는 경우가 많다. 



언젠가 시간이 생기면 이 빵집에서 하루에 세 시간이든 네 시간이든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아침에 지나가면서 저녁에 돌아오면서 같은 직원이 일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이들은 거의 항상 풀타임으로 일하는 직원이 필요한 것처럼 보이지만. 모든 테이블이 한 눈에 들어오는 공간, 늘상 마주치는 손님들 사이로 간혹 낯선 여행객들과 한 두마디 주고 받을 수 있고 편안한 음악이 흘러나오는 곳에서 머리 꼭대기에 양파돔의 중력을 느끼면서 케익을 자르고 수십잔의 커피를 내리는 일.  분명 돈이 되는 일이 아닐 것이고 피곤할때도 있겠지만 좋아하는 공간에서 내게 주어진 시간을 보내는 일은 추억과 다름아니다.



항상 있는 것은 아니지만 왼편에 랩에 싸여진 것이 샌드위치. 배고플 때 요기를 할 수 있는 유일한 메뉴인데 5분 가량 천천히 눌러서 데워 주는데 맛있다. 에클레어는 가장 대량으로 굽는 메뉴라서 일요일에도 항상 먹을 수 있다.  케익 종류는 매번 바뀌지만 전체적으로 굽는 케익은 거의 같다



맨 왼편에 놓인 키쉬 (Quiche) 이곳에서 샌드위치와 함께 요기 할 수 있는 메뉴. 빌니우스의 어느 카페를 가나 키쉬는 거의 항상 있다. 살짝 데워준다. 리투아니아어로는 키샤스 Kyšas 로 번역되어 쓰인다. 사실 원어에 근접한 발음대로라면 키쉬스 Kyšis 로 번역되는것이 더 매끄러울텐데 키쉬스가 '찔러 넣는다'라는 동사에서 파생된 뇌물을 뜻하는 명사라서  그냥 원어의 어미를 걷어내고 남성 명사화 시켜서 키샤스로.  Q로 시작되는 외래어가 나왔으니 말인데 퀴노아도 (Quinoa) 도 리투아니아에서는 Knyva 로 바뀌어서 쓰인다. 퀴노아와 크니봐. 너무 다른듯 보이지만 아마 퀴노아보다는 퀸와로 읽어서 와에 근접한 wa 를 리투아니아식으로 바꾸다보니 va 가 되었을거라 생각하면 또 그런대로 이해가 된다. 책을 뜻하는 크니가 (Knyga) 와 한 글자 차이이다. 



계산대 위에 놓여진 것은 보통 크루아상이나 소시지나 버섯, 양배추가  들어간 빵류



자잘한 비스킷이나 쿠키류. 한 개든 두 개든 원하는 만큼 살 수 있다.



이곳의 나폴레옹이 참 맛있는데 아마 비슷한 양과 질의 나폴레옹을 구시가지에서 먹는다면 4유로 정도는 내야 하겠지만 이곳에서는 커피 두 잔에 케익 두 조각을 먹어도 왠만해서는 8유로를 넘기지 않는다.



맛있는 메도브닉과 오븐에 완전히 굴복한 말랑말랑한 사과 반쪽이 들어가 있는 사과 빵. 항상 일정한 맛의 개성없는 커피를 특별하게 만드는 빵과 케익들.



늘상 어느 케익 위에든 반사되는 어렴풋한 거리의 모습. 



전부 맛있는 케익들이지만 이 빵집에서 가끔 아쉬운게 있다면 대부분의 케익이 리코타 치즈나 마스카포네 치즈가 베이스인 케익이라는 것. 과일이 들어 간 것이 많아서 보통 시큼하고 너무 부드러워서 그냥 크림을 먹는 느낌으로 금세 먹어 버리게 된다. 좀 묵직하고 식감이 있는 케익들도 많이 만들었으면 좋겠다. 



어딘가에서 공수해 온 정량으로 분절된 조각 케익을 파는 곳보다 (그런곳들은 대신 맛있는 커피를 판다) 이렇게 쟁반에 담겨져 있어서 원하는 만큼 잘라주는 케익을 파는 곳들이 사실 좀 더 좋다. '이만큼 자를 까요?' 라고 물어보면서 칼을 컴퍼스처럼 돌리는 손길과 자른 케익 아래에 조심스럽게 칼등을 집어 넣어 저울로 옮겨 가는 찰나의 침묵. 무게를 달고 킬로당 가격을 입력하고 케익 쟁반을 다시 제자리로 가져다 놓으면서 '또 뭐 필요해요?' 라고 물어봤을때 혹시 남아있을지 모를 미래의 커피를 생각하며 다시금 두리번 두리번 빵들의 표정을 살피게 되는 그런 과정들. 단촐한 일상만이 획득할 수 있는 그런 안락한 감정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생각하게 하는 최소한의 희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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