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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d

빨간 양파와 피스타치오



그냥 보고 있으면 예쁜, 그런 정물화 같은 식재료들이 있다. 예를들면 약간의 물기가 흩뿌려진 푸릇푸릇한 아스파라거스나 우둘투둘 검버섯이 피어서는 속은 한없이 부드럽고 고소한 아보카도 같은 아이들,  저기 멀고 먼 페루나 볼리비아 어디쯤에서부터 약에 절어서는 수일이 걸려 이곳에 도착한 아이들이겠지만 가끔씩 집에 데려오게 되는 것이다. 빨간 양파 같은 경우는 보통은 푸석푸석한 검붉은 자주색 껍질에 휘감겨져 있어서 야채 코너의 채도를 떨어뜨리는 주범이기도 하지만 군데 군데 벗겨진 껍질 위로 마트 조명이 내려 앉으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빛나는 자줏빛을 꺼내 보인다 . 아무런 세공도 거치지 않은 이 야채 코너의 자수정을 보통은 하나씩만 사다 놓고 드레싱에 잘게 썰어 집어 넣거나 그냥 샐러드에 넣어 먹거나 그렇게 되는데 며칠 전 꾸러미채 할인을 하길래 1킬로 정도 집어왔다.  요리책에서 볼 때마다 도대체 어떤 음식일까 했던 그 음식을 한 번 해보기 위해서.  쓰여진 대로라면 딱히 조리라고 할 것도 없이 너무 간단하여... 





요리의 내용인 즉슨. 양파를 털끝하나 건드리지 않고 껍질채로 용기에 넣고 소금으로 완전히 덮기.  그리고 1시간동안 220도의 오븐에 넣어 두기 그리고 잊기.  코셔 소금을 사용하라고 쓰여 있는데 그냥 집에 있는 비교적 가는 소금으로 덮었다. 부엌 베란다 포대 자루에서 한 그릇 퍼서 부엌으로 가져가는데 며칠 지나서 바닥에 떨어진 소금을 밟으면 발바닥 엄청 아픈 그런 한국 소금으로 덮으면 정말 좋을것 같다. 리투아니아의 소금은 보통 1킬로그램씩 두꺼운 도화지 재질의 상자에 담겨 있는데 가스레인지 옆에 놔두고 쓰는 용기에 덜어 넣으면 나머지 소금이 담긴 상자는 정말 오랫동안 부엌 서랍속에 있어야 한다. 저 소금도 정말 지루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가 오븐 마사지를 받고 장렬히 열반의 길로 들어섰다. 





예전에 한번 그냥 소금 더미에 닭 한마리를 눕힌채로 오븐에 넣어 둔 적이 있다. 유태인식 닭구이. 쫄깃쫄깃하고 고소한 닭이 오븐 밖으로 나온다.  물이 없고 인삼이 없을 뿐이다.  이 양파들도 소금들 사이에서 물을 토해내며 얼마간 지글지글 거렸다. 오븐 밖을 빠져 나온 용기가 너무 뜨거워서 더 두툼한 용기에 담아 놓고 소금 속을 탐험하기 시작. 대나무 통이라도 있었으면 남은 소금으로 죽염을 만들 수도 있을것 같았다. 일부 소금들은 양파에서 흘러나온 수분으로 옅은 자주색을 띠며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뜨거운 소금 사막을 빠져나온 양파는 축 늘어져있지만 아직은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칼 없이도 그냥 벗겨지는 껍질들. 부드럽게 벗겨지는곳까지 자연스럽게 걷어내면 기름에 절여진듯 매끈하고 투명한 부분까지가 나타난다.




쓰레기를 곁에 두고 한 컷. 껍질을 벗기다보니 너무 남는게 없어 보여 일부 남겨둔 것들은 확실히 색깔이 별로 예쁘지 않다. 그냥 정말 거의 투명하다 싶은 색이 나올때까지 아낌없이 제거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요리책의 사진보다는 확실히 좀 덜 맛있어 보인다.  너무 흐물흐물해져서  형태를 유지하면서 반으로 자르는데 애를 먹었다. 확실히 소금 입자가 너무 작아서 그런건가 싶다. 왠지 좀 더 단단하고 덜 익은듯한 식감이었어야 할 것 같다. 이 양파요리는 그냥 달다.  책에는 모짜렐라나 부라타 치즈와 곁들여 먹으라고 되어 있다. 버터 바른 빵에 양파를 얹고 모짜렐라를 언저 조금 녹을만큼만 토스트해도 맛있을 것 같다. 껍질을 벗기고 반으로 잘라서 올리브 오일을 뿌리고 소금을 넣은 후 피스타치오를 뿌리면 되는데 그날 마트에 피스타치오를 팔지 않아서 사서 넣지 못했다. 기본적으로 빨간 양파가 달기 때문에 넛 중에서도 가장 짭쪼롬하고 개성있는 피스타치오가 확실히 잘 어울릴 것도 같다. 뭐라도 뿌리고 싶어서 햄프씨드와 뜬금없는 건포도를 투척했는데 아무런 영향력도 행사하지 못 함.  저 양파가 양이 적은게 아닌데 그냥 줏어 먹다보니 거의 다 먹었다. 다음번에는 꽁지 부분이라도 좀 예쁘게 다듬어서 좀 더 굵은 소금으로 덮어서 꼭 피스타치오와 모짜렐라를 사다 놓고 먹어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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