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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투아니아어 24_Kasa 매표소



파네베지는 작은 도시이다. 처음 이곳에 버스를 타고 도착했을때 내 눈 앞에 미끄러져 지나가던것은 과연 언젠가 작동이 된 적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낡고 오래된 풍차들이었다. 지금도 여전히 그 풍차들에게서 이질감을 느끼곤 한다.  이곳에선 비단 그 풍차뿐만이 아니라 모든 장소들이 단 하나의 원칙적인 기능외로는 변주될 여지가 없어보이는 세트장 같은 인상을 주었다.  드라마 하나가 끝이나야 그제서야 건물 위치도 조금 바뀌고 간판도 바뀌고 사람들의 의상도 바뀔것같은, 이 도시를 뒤덮은 태생적인 수동성 같은것이 있었다. 사람이 적은 작은 도시를 여행하면 으례 영화 트루먼쇼의 느낌을 받는다.  사람들의 걸음걸이는 정해진 동선위를 수학 기호같은 표정으로 걸어다니던 세트장 속 엑스트라들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적막이 흐르는 이 도시를 태양은 이따금 태워버릴듯 내리쬔다. 그런날 유독 도시는 더 비현실적으로 다가온다.  며칠전엔 공터 한가운데에 서커스 트레일러가 서있는것을 보았다. 촬영이 취소된 서커스  트레일러가 설상가상 기름도 바닥이나서 애꿎은 주택가 공터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서있는듯한 느낌을주었다. 그것 역시 촬영장 한켠을 차지하고 있는 커다란 부속물에 지나지 않아보였다.  트레일러 너머 서커스장 천막으로부터 어떻게든 이 도시에서 살아남으려 하는 사람들의 텅 빈 환호성이 들려왔다.  파란 하늘 아래의 파란 서커스 트레일러, 도시를 이동할때마다 트렁크에서 끄집어내어져 세워지고 접혀지는 매표소 표시판을 보니 슬프고 우울했던 어떤 영화들이 떠올랐다. 서커스와 관련된 등장인물들이 나오는 영화들은 하나같이 그랬던것 같다. 엘비라 마디간, 성스러운 피, 베를린 천사의 시 같은 영화들 전반을 지배하는 속박의 정서가 있다. 우리는 급조된 천막아래에서 자유를 갈망하는 이들의 곡예를 본다. 나는 서커스가 싫다. 파란 하늘이 천막처럼 머리를 짓누르는 듯한 느낌이 싫다. 

Kasa (카사)는 일반적으로 일을 처리하면서 돈을 지불해야 하는 공간들의 총칭이다. 마트 계산대도 병원의 접수창고에도 이 단어가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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