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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

<Words with gods> 에밀 쿠스트리챠 외 8명 (2014)




<Words with gods> By Emir kustrica and 8 more


빌니우스에도 그들이 자부심을 가지고 매년 개최하는 영화제가 있으니 바로 매년 봄이 오는 이맘때쯤 열려 

'Kino pavasaris' 라는 이름으로 불리우기도 하는 빌니우스 영화제이다. Pavasaris 는 리투아니아어로 봄이라는 뜻. 

20여년간 이 영화제를 통해 적지 않은 김기덕 감독의 영화가 상영되었고 올해도 그의 작년작 <일대일>이 상영된다.

더불어 홍상수의 <자유의 언덕>과 유순미의 <북에서 온 노래>.박해일이 출연한 중국 감독 장률의 <경주>도 비평가 주간에서.

올해 선댄스에서 수상한 리투아니아 영화 <Sangaile>와 

무엇보다도 기본적으로 이 영화제에선 평소 보기 힘든 유럽 영화들이 많이 상영된다.

개인적으로 가서 보고 싶은 영화가 있다면 레오 까락스의 회고전을 통해 상영되는 <소년, 소녀를 만나다> 이다.

동숭아트홀 2번째 상영작으로 개봉 첫날 예쁜 포스터를 선물로 받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동숭의 그 작은 상영관에서 본 흑백 영화는 나에겐 정말 노스탤지어 오브 노스탤지어.

그리고 영화 평론가 로저 애버트의 자전적 다큐멘터리 영화 <Life itself> 도 보고 싶다.

그의 영화 평론을 읽어 본 적은 없지만 그가 언급했던 그의 베스트 리스트에 내가 좋아하는 영화가 많아서 그냥 좋다.

영화제 상영작 중 하나인 <Words with gods>은 옴니버스 영화로 <21그램>의 시나리오를 쓴 기예르모 아리아가의 제안으로

9명의 감독이 각기 다른 종교와 문화를 통해서 탄생과 죽음. 그리고 삶에 관한 우리의 끝없는 질문을 주제로 만든 영화들.

따로따로 만들어진 영화들을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인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라는 할아버지께서 배열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헥터 바벤코와 에밀 쿠스트리챠를 제외하고는 다 생소한 감독들이라고 생각했는데

각각의 이력을 검색해보니 <몬순웨딩>과 <링>처럼 이미 알려진 영화들을 만든 감독들이 많았다.

어떤 영화가 가장 좋았다고 말하기에 앞서 단연 돋보였던것은 영화의 배열이었다.

그 배열 사이에 절대적인 상관관계가 있었다고 보긴 어렵지만 

첫번째와 아홉번째 영화의 탄생과 죽음이라는 큰 틀안에서 7편의 영화가 맞물려서 진행되는 느낌이 들었다.  

영화는 호주 원주민 아보리진의 출산 과정을 담은 영화를 시작으로 해서 

갓 태어난 아기를 버리는 아내와 그로 인해 폐인이 된 남편이 아이의 죽음을 계기로 회복하는 브라질 영화가 두번째로

큰 아파트를 사서 함께 살려는 인도의 대가족은 '이곳 뭄바이에선 힌두교도와 무슬림들이 조화를 이루며 살지'라는 말이 

무색하게 누가 가장 좋은 윗방을 차지하냐를 놓고 예상치 못한 불협화음을 겪으며 

곧이어 일본의 후쿠시마 쓰나미로 모든 가족을 잃은 가장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탄생이라는 축복을 기대하기엔 황폐한 호주의 사막, 절망을 발견하기엔 너무 뜨겁고 열정적인 브라질의 도심을지나

조화를 기대하기엔 너무 복잡한 뭄바이의 마천루를 뚫고 나오면 집터만 간신히 남은 폐허가 된 후쿠시마의 해변이 등장한다. 

무슨 이유로 왜 굳이 나한테 이런 큰 비극이 일어나야 하냐고 되묻는 일본인의 외침으로부터 본격적으로 

평범한 우리가 삶과의 투쟁속에서 되묻는 원초적인 질문들에 대한 각기 다른 감독들의 대답이 시작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역설적으로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무신론이라는 제목의 멕시코 영화로 끝을 맺는다.



<Our life> by Emir kusturica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이라면 단연코 에밀 쿠스트리챠의 작품이었다.

습관처럼 기대했던 화려하고 생기넘치는 집시들의 몸짓과 색채대신 황량한 세르비아의 돌산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

돌 다듬기가 한창인 산 아래의 채석장. 수도승 복장의 남자는 배낭 가득 잘게 부순 돌을 담고 산을 오르기 시작한다.

왜 굳이 저렇게 힘들게 산을 오르지. 저 정도 돌은 산에도 많을 텐데. 산 정상에 뭐가 있길래 등등의 질문이 

꼬리를 물지만 이 짧은 영화가 곧 끝날걸 아는 우리는 오히려 강렬하고 허무한 결말을 예상해 볼 수 있다.

어쩌면 누군가는 그가 배낭을 들어맬때부터 시지프스를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채석장에서 올려 다 본 산은 묘목이라 해도 될만큼 작고 연약해보이는 주황빛 나무들로 겹겹이 층을 이룬 부드러운 언덕 같다. 

수도승이 산을 오르기 시작할때 하늘 위에서 내려다 본 산은 아래에서 올려 다 본 산과는 사뭇 다른 산이다.

그 역시도 단단한 돌로 뒤덮혀서 주황색 나무들은 바위를 뚫고 간신히 삐져나왔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억세게 흔들린다.

한 가득 돌을 짊어진 수도승의 어깨는 너무 무거워 보인다.

  한창 돌산을 오르던 그가 잠시 숨을 돌릴때 주황색 나무 만큼 강렬한 주황빛깔 뱀과 해골을 맞닥뜨린다. 

내 머릿속에는 배낭속에 담긴 그의 포도 한송이가 계속 맴돌았다. 

배낭 속 거친 돌 틈에서 문드러지지 않고 과연 정상까지 온전한 정신으로 올라 포도를 꺼내먹을 여유를 부릴 수 있을까. 

수도승이 정상에 올라 포도를 꺼내 들었을때 까마귀 한마리가 겁없이 날아와 포도알을 핥는다. 

그리고 그는 배낭을 풀어 산 아래로 돌을 굴려 보낸다. 돌들은 산산이 흩어진다.

그렇지. 돌을 옮겨 정상에 교회를 짓는 다거나 누군가의 무덤에 돌을 얹는 따위의 결말은 있을 수 없는 영화였다.

'인생은 아름답다'라는 말도 결국 험난한 인생에서 인간을 지탱하고 있는 최면 같은게 아닐까. 

멀리서 관조하면 주황빛 언덕이지만 오르기 시작하면 결국 돌산일뿐인 인생말이다.

이십년동안 해야지 해야지 하면서도 시작만하고 끝장을 보지 못하고 있는게 그리스 신화를 읽는거다.

숱한 신들의 이름과 페이지를 넘기면 곧장 까먹는 신들의 족보탓에 으례 겁을 먹고 또 책장을 덮어 버리게 되는.

힘겹게 돌을 끌어 올려서는 다시 산 아래로 굴러 가는 돌을 바라보는 이 수도승은 시지프스와 너무나도 닮았는데

난 종교에 대해 잘 모르지만 그리스 정교와 세르비아 정교에 유사성이 있다면 이 세르비아의 수도승이 말하고자 했던것은 

결국 우리가 영원이라는 테두리에서 맹목적으로 반복해야 할 삶의 무게에 관한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삶의 길목에서 만난 유혹적인 뱀과 허망한 두개골이라는 죽음을 뒤로하고 

니들이 어찌 신을 이기려드느냐 라는 훈계와 타협하며 개처럼 오른 산 위에서 

또 다시 달콤한 포도 한알의 유혹에 넘어가 내일 다시 돌을 짊어지게 될 우리의 삶 말이다.

수도승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것은 끝없는 고행을 의미할지도 모른다. 

언젠가 <한국인의 밥상>에 나왔던 전라도 익산의 석공들이 떠올랐다.

석산의 황토를 품고 자란 고구마가 몸속에 싸인 돌가루를 씻겨준다고 삶은 고구마와 막걸리를 씹어 삼키던 석공들.

백년간 그 돌산이 있었기에 그들의 삶이 풍요로웠고 돌캐러 가기 바쁜 석공들을 위해

뜨거운 국물에 개워내고 또 개워내서 후루룩 소화하기 쉽게 비벼진 산 특유의 비빔밥이 그날의 주제였다.



<True gods> By Warwick thornton


우연한 기회에 본 짧고 찐득한 9편의 영화들은 생각보다 많은 잔상과 숙제를 남겼다.

잊고 있던 그리스 감독 테오 앙겔로풀로스의 <영원과 하루>도 다시 찾아봐야겠다.

이란의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같은 감독이 참여했어도 좋았을거다. 

중고등학생 버전으로 읽었던 까뮈의 <시지프스의 신화>도 다시 한번 찾아 읽어야겠다.

하나의 영화가 뻗어내는 곁다리 같은 인연들이 소중하게 느껴지는 토요일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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