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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aly

Italy 04_코르토나로 가는 길 La strada per Cortona

 

이탈리아 여행의 여정을 돌이켜본다. 피사(pisa)와 루카(lucca)까지는 피렌체(firenze)에서 당일치기로 다녀왔고

피렌체를 떠나 아레쪼(arezzo)와 코르토나를 방문했지만 결국 다시 피렌체로 돌아와 베네치아행 기차를 탔었던듯 하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했다고 하지만

에트루리아인이 기반을 두었던 중부 이탈리아에서 그러니깐 투스카니의 모든길은 피렌체로 통하는듯 했다.

투스카니(tuscany)는 이탈리아어 토스카나(toscana)의 영어명칭이고 피렌체도 영어명칭은 플로렌스(florence)인데

토스카나는 무슨 가죽의류명칭 느낌이 살짝들고 플로렌스는 왠지 프랑스 지명같은데 아마 프로방스때문인가?

영어로 투스카니 발음을 들으면 항상 <투스카니의 태양>에서 산드라 오가 외치던 그 '터스까니'가 떠오른다.

다이앤레인이 여행 제안을 뿌리치자 못믿겠다는 표정으로 '투스카니라고 투스카니, 이를리 (ltaly)!'하는 그 장면.

 

 

빌니우스-밀라노 왕복티켓. 그리고 단 2주라는 시간.

그래서 로마나 시칠리아처럼 멀찌감치 떨어진 남부 이탈리아는 아예 루트에 집어 넣지 않았다.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로마 3주일, 나폴리 2주일 이런식으로 계획을 세워서 나중에 오는게 나아보인다.

기차를 타고 이삼십분만 달리면 같은 듯 전혀 다른 도시에 다다를 수 있었던 이탈리아.

 아직 가보지는 못했지만 그런 맥락에서 프랑스나 스페인 같은 나라들도 비슷할 것 같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유독 이 세나라에 미련을 못버리는게 아닐까.

왠지 여기도 한번 가봐야 할 것 같고 저기도 한번 가봐야 할 것 같은 수십개의 부스로 가득찬 박람회같은 나라.

파리와 로마 바르셀로나에 대한 로망은 이미 한 나라에 대한 로망과 다를바없이 커버렸고

그외의 작은 소도시들을 둘러보는 재미는 파리에서 얻는 감흥과는 또 다른 종류일것이다.

 

 

페루자,몬테풀치아노,산 지미냐노,시에나,볼테라... 

베네치아에 대한 '의무감'같은게 없었더라면 피렌체 주위의 더 많은 소도시들을 둘러 볼 수 있었을것을.

처음으로 운전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를 렌트한다면 기차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투스카니의 풍경을 즐겨가며 짧게라도 이 소도시들을 구경할 수 있을텐데.

 

 

이 풍경들은 모두 코르토나의 풍경이다.

코르토나에 가기위해 피렌체를 떠나 아레쪼행 기차에 올랐다.

아레쪼는 <인생은 아름다워>의 배경이 된 소도시인데 개인적으로 그 영화에 그다지 감동받지 못해서

아레쪼 자체에도 별다른 매력을 못느꼈다.

아레쪼에 내려서 코르토나행 기차표를 사고 출발시간까지 잠시 여행하는걸로 충분했다.

하지만 <인생은 아름다워>를 다시 한번 보면 색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을것 같다고 또 최면을 걸어보고.

 

 

아레쪼(arezzo)에서 20분정도 기차를 타면 카무치아-코르토나(camucia-cortona)역에 도착한다.

하지만 역에 내려서 바로 코르토나에 입성할 수 있는것은 아니었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에 보면 에트루리아인과 로마인, 이탈리아의 그리스인에 대한 특성을 적은 부분이 있다.

로마가 번성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방어에 여의치 않은 장소에 도시를 건설한 로마인의 개방성이 작용했고

바닷가에 도시를 세운 그리스인은 통상에는 능숙했지만 적의 침입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리고 에트루리아인은 방어에 완벽한 언덕에 도시를 세우길 좋아했고 그래서 발전가능성이 미약했기때문에

그 당시의 도시들은 지금도 여전히 중소도시로 남아있다는것이 그녀의 의견.

"열차역에 내려도 금방 시내로 적어도 구시가지로 나갈 수는 없다. 버스를 타고 능선을 따라 언덕마루까지 올라가야만

겨우 시가지에 닿을 수 있는 것이 이 도시들이다." -로마인 이야기 1권-

 

 

하물며 우리는 쏜살같이 역을 뛰쳐나와서는 멋도모르고 길을 걷기 시작했고

에트루리아인이 견고하게 쌓아올려 건설한 이 도시를 두발로 걸어 오르며 그저 웃었다.

사실 버스가 있는지도 몰랐을뿐더러 있었더라도 탈 생각은 하지 않았을거다.

 

 

론니플래닛에서 친절하게 시오노나나미의 <로마인이야기>를 인용하지도 않았을뿐더러

기초 이탈리아어 분량보다 적은 4페이지 분량이 할애된 코르토나편에 그나마 구시가지 지도가 첨부된것이 기적이었다.

지도 아래쪽에 화살표로 카무치아- 코르토나역 4.5킬로미터라는 표시를 그다지 눈여겨보지 않았었다.

사실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그 거리를 봤었더라도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사실 4.5킬로가 쉬엄쉬엄 걷기에 먼거리는 절대 아니기때문이다.

 

 

다르질링에서 이틀동안 해발 3700미터까지 올라가는 트렉킹을 했지만

넓직한 길에 거의 경사가 지지 않은데다가 천천히 올라갔기때문에 그다지 힘들지 않았었다.

늦게나마 에트루리아인의 건설철학을 알게되서 지금이야 아 그랬구나 하지만 그때는 정말 고개를 갸우뚱했던 기억이 난다.

 

 

피렌체 두오모에서 받은 충격이 너무 커서 왠만한 성당의 돔은 그냥 양파,

 단어의 뉘앙스를 고려해서 상대적인 차이를 묘사하자면 심지어 '다마네기'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그런 곳들이 많았지만

신에 대한 경배와 믿음을 두오모의 크기따위로 판단 할 수는 없는것이고

게다가 이 높은 언덕위에 묵직하게 자리잡고 있는 두오모는 피렌체의 그것보다 훨씬 강한 중력으로

신과 인간을 연결하고 있는듯 했다.

 

 

짧은 여행에 다행히 무거운 짐도 없어서 걷기 힘들거나 하지는 않았다.

 2차선도로위 간간히 지나다니는 자동차와 우리 둘 그리고 키크고 깡마른 사이프러스들.

앞으로 디딛게 될 길을 마주하면서 수시로 이미 지나온 길을 돌아보는 여정.

그 찰나의 순간에 과거는 미래에 겹치고 끝없는 데자뷰를 경험하게 된다.

 

 

사실 위험하다.

이런상황에서는 최소한 차가 질주하는 역방향으로 걸어야 안전하다.

최대한 돌담에 바짝붙어서 최대한 서로 말을 아끼며 개인적인 시간을 가지는게 좋다

라고 말하고 싶지만 '돌담에 바짝 붙어' 혹은 '차 온다 조심해' 뭐 이런 소리는 계속 하게 될거다.

 

 

정확한 명칭을 모르겠는데 다르질링에서 히말라야 트렉킹을 하다보면

마을이 나올 무렵에 나무들위에 형형색색의 천들이 감긴 모습을 볼 수 있다.

비수기에 트렉킹을 했어서 다른 여행자들을 거의 못만나는 상황에서 다다르는 그런 장소는

진부한 표현일지 모르지만 정말 사막의 오아시스 같았다.

그 장소를 지나 조금 걷다보면 쓸쓸하게 손님을 기다리는 롯지들이 나타났고

차갑고 허한 속을 달래줄 따뜻한 티베탄 인스턴트 누들 같은것을 먹을 수 있었다.

이 첩첩산중을 통과하고나면 코르토나 전통 스파게티 같은것을 먹을 수 있는걸까?

 

 

9월말의 화창한 날씨.

무덥지도 춥지도 않은 최적의 날씨였지만 한바퀴 두바퀴씩 돌고돌아 조금씩 높아지니 쌀쌀함이 느껴졌다.

코르토나의 온도를 조심스레 짐작해본다.

 

 

이탈리아의 투스카니에서 다르질링의 히말라야를 떠올리게 될 줄은 몰랐다.

더불어 칸첸중가에서 느끼는 감동과 햇살나무라는 만화영화 속 그 얕은 언덕위에서 세원이가 느꼈던 포근함은

부피만 다를뿐 비슷한 무게의 감동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금전에 눈앞에 버티고 있던 성당이 이제 조금씩 점이 되어간다.

 

 

여행을 조금더 일찍와서 해바라기나 양귀비가 만개한 모습을 보았다면

굳이 높은 언덕위에 도시를 지으려했던 에트루리아인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냥 언덕위에서 바라본 사이프러스와 낮은 구릉들이 너무 아름다워서

펜트하우스를 동경하는 현대인처럼 춥니 덥니해도 옥탑방을 낭만적이라고 여길 수 있는 로맨티스트처럼

언덕위의 전망을 포기할 수 없었던거라고 혼잣말로 시오노 나나미에게 반박해본다.

 

 

성당은 이만큼이나 멀어졌다.

이제는 거대한 중력대신 손가락으로 톡 쳐서 밀어내면 저 아래 기차역까지 데굴데굴 굴러갈듯 나약에 보인다.

저 아래에서 그리고 이 언덕위에서 오밀조밀 성당으로 모여드는 마을주민들을 상상한다.

 

 

'이곳은 더이상 코르토나가 아닙니다.'

역설적이게도 우리는 코르토나에 들어섰고 이제 저 멀리 트라시메노 호수(Lago di trasimeno)가 보인다.

 

 

발코니에 서있는 저 사람도 우리가 밟고 올라온 길을 걸어 자신의 자취를 더듬어 보는 것이라고

우리에게는 풍경이 되버린 자신을 모르고 우리에게는 보이지 않는 또 다른 풍경에 감탄하고 있는것일지도 모른다.

 

 

또 다른 성당이 보인다.

왠지 이런 성당이 열개는 더 있을것 같다.

여행을 할때마다 비슷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트루먼 쇼>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같은 느낌.

그냥 거대한 테마파크 혹은 세트장에 들어와서 나만 모르고 모두가 아는 장소를 헤매는 느낌.

그런 생각으로 역설적이게도 아무도 나를 해치지 않을것이고 나는 안전하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리고 이곳이 바로 코르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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