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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

만춘 晚春 (1949)

 

 

 

<만춘>

 

6년전인가 이 영화를 하얼빈의 기숙사에서 처음 보았다.

복제디비디를 쌓아놓고 파는 가게들이 몇군데 있었는데 단속이 뜨면 며칠이고 장사를 안해서

혹시라도 문을 닫을까봐 진심으로 걱정하곤 했다.

영화에 따라 가격 차이가 있었지만 대략 6위안이면 고화질의 영화 DVD 를 살 수 있었는데

그때 운좋게 구입한것이 바로 크라이테리언 콜렉션의 이클립스 시리즈중 '오즈 야스지로' 시리즈였다.

<이른 봄>,<가을 햇살,<여름의 끝>,<피안화> 그리고 <만춘>

예술 영화관에서 회고전이라도 열지 않으면 볼 기회가 없는 이런 영화들을

'아 너 또 왔구나'라는 표정으로 까먹던 해바라기씨를 기계적으로 쓱 밀어내고는  검은봉지에 주섬주섬 싸주시던 아줌마.

산더미처럼 싸인 비닐 포장된 디비디들을 계속 넘기다보면 어느새 손가락이 새카매졌다.

이미 누군가가 공들여서 골라놓은것이라는것,누군가가 그 희소성에 값을 매긴다는것이 난 오히려 다소 찝찝하지만

크라이테리언 콜렉션이 매력적인 놈들인것은 분명하다.

해적판이긴 하지만 이미 13편이 내 손안에 있다. 음 한번 마음먹고 찾아봐야하는건가?

물론 특정 영화들이 콜렉션 마크를 달고 다시 릴리즈되는것 뿐이지

일부러 cc(criterion collection)마크가 달린 수백편의 영화를 수집하는것은 수집벽이 있어야 할 수 있는 미친짓같다. 으흠

물론 크라이테리언 콜렉션에서가 아니면 보기힘든 영화들이 대부분이긴하지만

예를 들어서 <아마겟돈>이나 <첩혈쌍웅>처럼 그냥도 구할 수 있는 영화를

단지 크라이테리온 마크 때문에 수집하는것은 무의미하다 소리.

 

<만춘>은 첫번째로 본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였는데 마음에 들었다.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어떤 시적인 지루함이랄까.

영화의 산문성에 길들여져있던 우리에게 오즈는 영화라는 시를 읽는 즐거움을 가르쳐준다.

 

 

 

별로 안 친한 사람이랑 단 둘이 남겨졌을때 보통은 난처해한다.

사람들은 정적을 두려워하고 대화의 단절을 피하려 무던히도 애쓴다.

의미없는 농담과 신변잡기적인 이야기들이 오간다.

운이 좋으면 그런 대화를 통해서 사람들은 공감을 얻고 가까워지지만 그렇지 않으면 서로에게 잊혀지는 존재로 남는다.

우리가 진심으로 좋아하는 사람들과 있을때도 가끔은 침묵의 순간이 온다.

결코 깨뜨려버리고 싶지 않은 정적, 말로는 표현할 수 없었던 감정을 대신 전달해주는 보이지 않는 공기의 흐름같은것.

 

고정된 카메라를 통해 오즈의 영화가 보여주는 장면들은 한정되어 있다.

상점의 간판이라던가 자연 경관. 등장인물들이 앉아 있는 식탁씬.

그 모든 장면들 중 내가 가장 좋아하고 가장 오즈 야스지로 답다고 느끼는 장면은 바로 이런 복도씬이다.

영화를 지배하는 침묵중에서도 가장 견고하고 순수한 침묵.

인물들이 함께 있다가 각자의 자리로 돌아간 후 혼자가 될때 그들의 머릿속에 점점 차들어가는 공기 같은것.

복도는 장소와 장소를 분할하는 공간이면서 인물들이 헤어지고 만나고 교차하는 감정의 섬 같은곳이다.

 

 

딸에게 자신의 허전한 속마음을 숨긴채 창밖을 내다보며 '오늘도 날씨가 좋겠구나'라고 딴소리하는 아버지와

외동딸을 시집보내고 집으로 돌아와 타월을 정리하며 이제 혼자가 됐음을 실감하는 아버지.

상대에게 자신의 진심을 들키고 싶지 않을때에도  인물이 관객에게 가장 솔직해지려 할때에도

감독은 그들을 복도 한 가운데로 데려다 놓는다.

그 침묵속에서 관객과 인물들은 홀연히 마주하고 그곳에는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공통의 정서같은것이 있다.

 

 

<도쿄 스토리>보다 먼저 만들어진 이 영화에서 치슈 류와 세츠코 하라는 홀아버지와 외동딸을 연기한다.

일찍부터 어머니의 빈자리를 대신했던건지 외동딸 노리코는 때로는 깍쟁이 부인이 남편을 대하듯 아버지를 뒷바라지 하고

아버지에게도 딸은 이미 보살펴야 할 존재가 아니며 딸의 관심과 간섭은 그에게 이미 일상이 되어버렸다.

<도쿄 스토리>를 보고 나서 다시 한번 이 영화를 보고 나니 여러가지 재밌는 부분들이 있다.

부인을 떠나보내고 출가하지 않은 외동딸과 남게되는 도쿄 스토리의 아버지와

여동생이 시집가면 남은 아버지는 누가 돌보냐며 그래서 엄마가 더 오래 살기를 바랬다고 말하는 큰 딸.

 그런 큰 딸의 현실적인 고민이 바로 <만춘>의 기본적인 뼈대가 된다.

나이가 찬 딸을 시집 보내려하는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를 남겨두고 싶지 않은 딸.

그런 딸의 심정을 알기에 자신도 재혼을 할거라고 말하는 아버지와 그 아버지에게 묘한 질투와 상실감을 느끼는 딸.

 

 

마치 토라진 연인처럼 돌아서서 저만치 멀어져가는 딸의 뒷모습을 묵묵히 감내하는 아버지.

결혼을 하고 나서 다시 영화를 보니 이런 장면에서는 울컥했다.

시집을 가고 나서 어머니가 돌아가신 상황이라면 노리코는 아버지의 재혼에 관대해질 수 있었을까.

아마 그때는 아내처럼 아버지를 돌본 아내같은 입장에서가 아니라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향수때문에라도

재혼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을것 같다.

 

 

딸이 자신의 제자와 결혼하기를 기대하는 아버지이기에 그와 자전거를 탔다는 딸의 말에 아버지는 뛸듯이 기뻐하지만

그에게 약혼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몹시 실망한다.

노리코가 결혼을 망설였던 이유가 단지 홀아버지때문만은 아닌것 같다.

스스로 질투심이 많은 여자라고 말하는 노리코에게 있어 호감을 느꼈던 남자가 이미 약혼자가 있다는 사실은 상처였을것 같다.

질투에 관한 노리코와 하토리의 대화는 서로의 감정에 솔직해 질 수 없는 상황에 놓인 두 사람의 말장난 같아 인상깊었다.

 

-넌 내가 어떤 여자라고 생각해?

-질투가 많은 여자일것 같지는 않아.

-반대야. 내가 피클을 자를땐 항상 두개가 달라 붙어서 안떨어진다구. 그건 내가 질투심이 많다는 소리야

-그건 너가 칼을 쓰는 방법과 도마의 문제이지 피클과 질투심사이에는 아무 관계도 없어

-그래서 너는 피클이 달라붙어 있는게 더 좋아?

-난 내 피클이 달라붙어있어도 상관없어.

 

자기가 관심도 없는 남자에게 여자는 자신이 어떤 여자같아 보이냐고 묻지도 않을것이며

남자 역시 자기가 관심없는 여자라면 굳이 왜 질투심에 대해 언급했는지 궁금하다.

남자에게는 이미 정해진 결혼상대가 있었던것 같고 하토리 역시 노리코를 좋아했을지 모른다.

마치 내가 질투를 하더라도 내가 곁에 있는게 좋겠어? 어 나는 그래도 상관없어.라고 말하는것 같다. 

나의 억측인가?

아버지와의 관계에 있어서도 노리코는 똑같은 상황에 놓여있다.

달라붙은 피클처럼 아버지를 떠나고 싶지 않은것.

결혼을 하려는 남자와 재혼을 생각하는 아버지 사이에서 노리코는 딸이 아닌 여자로써 자존심이 상했을것이다.

 

 

혼기에 찬 당시 여성들의 결혼관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도 흥미롭다.

노리코는 결혼에 무관심한척하지만 동창생들의 결혼소식에 민감하고

이미 이혼을 한 아야는 노리코에게 일단 결혼을 하고 싫으면 이혼을 하라는 조언도 마다하지 않는다.

자기 직업에 자부심이 있지만 이혼하지 않았더라면 일을 시작하지도 않았을거라고 말하는 타이피스트 아야.

야구로치면 일회말을 끝냈을뿐 이혼했다고 내 인생이 끝난것은 아니라고 말할정도로 당당하다.

반면에 노리코는 재혼을 한 삼촌을 불결하다고 생각하며 아버지의 재혼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자신을 합리화한다.

 

 

결혼을 결심하고 아버지와 교토로 여행을 떠나는 노리코.

결혼을 하기로 마음은 먹었지만 남겨지는 아버지에 대한 생각으로 여전히 마음은 복잡하다.

아직 결혼에 확신이 없는 딸에게 아버지는 결혼과 인생에 대한 생각을 담담하게 얘기한다.

결혼에서의 행복이란 새로운 인생을 시작해서 꾸려나가는 그 과정에 있는것이지 일시적인 감정같은게 아니며

행복은 기대하고 기다리는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것이라고.

 

 

오즈의 영화속에서도 인물들은 크고 작은 갈등을 겪지만 그 갈등들은 신경질적인 불행의 뉘앙스를 주지 않으며

그들이 느끼는 행복감과 기쁨 역시 결코 해피엔드라는 인공적인 결말의 동의어는 아니다.

 

그의 말대로라면 행복은 어떤 말초적인 기쁨의 감정이 아니라 우리가 부딪쳐서 경험 해야 할 현상의 일부인 것인가?

행복이 불행의 반의어가 아니라면 그것은 우리가 추구해야 할 인생의 목적이 될 수도 없을것이다.

그것은 불행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경험해야 할 또 하나의 현상일 뿐이고

때가 되면 변하는 계절처럼 우리가 부딪쳐야 할 인생의 여러가지 모습중 한 부분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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