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의 언덕>
올해 리투아니아의 빌니우스 영화제 Kino Pavasaris 에서는 홍상수의 2014년작 <자유의 언덕>도 상영이 된다.
빌니우스의 관객들이 그의 이전 다른 작품들을 접할 기회가 있었기를 바란다.
그의 영화들만큼 유기적으로 연결된 영화들이 있을까도 싶고
그 연결 장치조차 우연처럼 가장 할 줄 아는 감독의 연출 방식을 알고 볼때에야 영화가 배로 재밌어지기 때문이다.
그의 영화의 내러티브는 작품내에서가 아닌 오히려 작품외에 존재하고 있다는 생각이 가끔든다.
그는 이미 어떤 등장인물이 참가해도 무리가 없는 자신의 이야기 하나를 가진채로
그때그때 시간이 되는 등장인물들을 비슷한 공간에 불러다 놓고 그들 자신의 이야기를 약간 버무려서 영화를 만들어낸다.
사건의 나열은 뒤죽박죽이고 간신히 정립해놓은 인과관계도 익숙한 공간의 뜬금없는 등장으로 머릿속에서 뒤엉켜버린다.
그의 습관들은 영화속에 녹아있고 그가 영화를 정말 습관적으로 만들고 있다는 인상을 주며 우리는 습관처럼 그의 영화를 본다.
이 영화를 이끌고 가는 기본 뼈대는 일본인 모리가 권을 찾아오는 여행과 기다림의 장치인데
그 기다림은 이 영화의 시작과 더불어 생겨났다기보다는 이전부터 있어오던 영화의 외적 장치처럼 느껴진다.
이전 작품인 <우리 선희>에서 이선균과 김상중이 그리고 정유미 조차 늘상 기다리던 정재영의 집 건너편 식당에서
백반을 먹고 있는 모리를 보고 있자면 현해탄을 건너온 그가 기다림에 임하는 자세 역시 그저 단순한 일상처럼 느껴진다.
새로운것이 없는 새로운 영화에서 감독은 또 무얼 얘기하려는걸까.
이 영화 포스터는 뭔가 너무 가볍고 화사하고 동적이어서 기분이 좋다.
여름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데 <강원도의 힘>에서처럼 찐득거리고 질척거리는 불쾌지수 만빵의 여름이 아니라
곧 가을의 길목에 들어서기 직전의 적당히 뽀송뽀송한 습도의 여름이랄까.
흑백으로 찍어진 그의 몇몇 겨울 영화가 실제보다 훨씬 추워보여서 실내에서 술을 마시는 장면이 상대적으로 따스한것처럼
인물들의 가벼운 옷차림과 화사한 표정처럼 이 영화는 점점 높아져가는 늦여름의 하늘색을 닮았다.
빚더미에 앉은 남자나 집나와서 유부남과 여관에 머무르는 여학생이나 답장없는 편지를 기다리는 일본인이나
그들이 가진 고민의 무게에 의식적으로 집착하기보다는 시덥지 않은 자잘한 현상들을 보는것에 우리는 재미를 느낀다.
항상 때가 지났다고 밥을 주지 않는 게스트 하우스 주인에게 모리(카세 료)는 왜 저 사람은 이 시간에 밥을 먹느냐고 묻는다.
마루에서 밥 먹는 사람은 사업하다 큰 빚을 진 조카이지 손님이 아니라고 구차하게 설명하는 주인.
평소 모리와 살갑게 영어로 대화하고 아부떨던 조카는 무슨 그런 얘기까지 하냐며 불만섞인 한국말을 내뱉는다.
공기밥 하나만 얹으면 오손도손 같이 먹을 수 있지만 그런 살갑고 인공적인 전개를 감독이 보여주지 않을것을 우리는 안다.
기본적인 예의범절에 의거한 습관적이고 형식적인 인간관계를 통해서 우리가 타인에게 기대하고 요구하는 이상적인 반응들.
자신이 기대했던 반응과는 다른 말과 행동을 보이면 인물들은 주춤하고 거리를 두기 시작하며 까칠해진다.
까칠하다거나 찌질하다는 단어는 특정 성격을 묘사한다기보다는 누구에게나 잠재되어 있는 본능에 가까운 요소이다.
사실 자유의 언덕이라는 제목 자체도 모리가 일본어 간판인 동명의 카페를 찾는다는 설정에 의거한것일테지
거기에서 감독의 의도를 찾으려드는게 무의미할 수도 있겠지만 굳이 영화에서 살짝 보여지는 자유의 의미를 갖다 붙이자면
일반적으로 그러하다고 통용되는 사실을 기반으로 형성된 편견들, 우리의 행동을 제약하는 말과 타인의 의견에서의 해방같다.
현재 과거 미래는 우리가 만들어 낸 틀일뿐 실체가 아니라는 모리의 책속의 구절도 어떤 의미에서 자유를 의미하겠지만
그것은 오히려 계단에서 흩어진 편지로 뒤죽박죽된 시간처럼 이 영화를 이끌어가는 기술적인 장치 정도를 의미할뿐이다.
재밌었던 장면 중의 하나인데.
<우리 선희>에서 교수님 해외 출장갔다고 뻥치던 이민우가 다시 돌아왔다.
<다른 나라에서> 이자벨 위뻬르가 출연했을때부터 언젠간 홍상수가 외국 남자 배우도 섭외하지 않을까 했었는데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 같은 표정을 지닌 배우 정도면 무슨 영화과 초빙 교수로라 나오면 엉뚱하고 재밌겠다 생각했었다.
재밌는것은 일본인에게 필요이상의 친절과 관심을 보이는 문소리를 쳐다보는 이민우의 표정이다.
언젠가 문소리도 저런 표정을 지었더랬다.
이자벨 위뻬를 여신대하듯 대하는 권해효를 바라보던 임신 막달의 문소리가 섬광처럼 지나갔다.
지금 우리를 짓누르는 고민의 무게보다 우리가 시급히 이해해야 할것은 그것에 어떠한 자세로 대처할것인가의 문제같다.
상대적으로 나은 조건의 삶을 사는 사람들도 고민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
객관적 잣대를 통해 저 사람은 나보다 나은데 왜 저런 고민을 할까라는 말도 안되는 편견속에서
타인의 고민과 삶을 한창 가볍게 여기는 오류를 우리는 자주 범한다.
하나의 주제를 놓고도 누군가는 블랙 코미디를 만들고 누군가는 잔혹 호러물을 그리고 휴먼 드라마를 만드는 것처럼
연인의 집 주변을 배회하는 남자의 골치아픔의 무게를 우리가 가늠하기는 힘들지만
그것에 대처하는 그의 자세의 무게는 그가 들고 다니는 딱 저 작은 책만큼 가벼워 보인다.
이해하기 힘든 타인의 행동. 나에게 상처를 줬다는 말 따위도 알고보면 우리 스스로의 이상이 빚어낸 허상일 뿐.
흘러가는 한 마디의 말, 미세한 표정에서도 부자유스러운 우리가 과연 더 큰 자유를 열망한다는것은 허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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