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크라이테리언 수집에 대한 생각을 가끔한다.
발매되는 모든 작품을 가리지 않고 구입하는 열혈 수집광은 절대 될 수도 없거니와 되고 싶지도 않지만
내가 본 영화를 중심으로 좋은 영화를 모으는것을 고려해보니 그것도 꽤 많은 지출이 필요할것 같아서 세분화시킨 구입 기준은
흑백영화 타이틀만 모으거나 감독의 데뷔작만 구입하는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내가 우연히 가지게 된 몇 안되는 타이틀이 전부 흑백이라서 동일성을 부여하고 싶은건지도.
그리고 아무장면에서 멈춰도 항상 포토제닉한 정적인 영상때문인지도 모른다.
하긴 70년대 이전 타이틀이 절대적으로 많은것을 생각하면 타이틀 절반이 흑백영화일지도 모르니 만만치 않은 수집조건일듯.
<Mala noche>와 <아이다호>. 크라이테리언 콜렉션에서 발매된 구스 반 산트의 영화 두편이다.
구입한것은 아니지만 흑백영화이자 감독의 데뷔작인 이 작품이 몹시 땡긴다.
구스 반 산트의 많은 영화에서 내가 기억하는 낭만은 사실 시각적인 이유가 물론 크다.
<드럭스토어 카우보이>나 <아이다호>. 최근의 <레스트리스>까지.
프레임의 한 귀퉁이에서 세상의 막다른 길에 몰린것같은 인물들에게서 뿜어져나오던 절대적인 고독과 외로움.
일을 끝낸 후 아파트로 돌아와 아침을 맞이하며 그들이 묵묵히 끓이던 커피.
왠지 그 시대의 모든 이들이 그런 모자르고 절제된 낭만속에 살았을거라 착각하게 만드는 정제된 시퀀스들.
나의 얘기와는 너무 동떨어진 나와 가까운 사람들에게서도 발견하기 힘들것만 같은 그저 아득하게만 느껴지는 누군가의 인생.
나는 줄곧 그들에게 동정심을 느꼈지만 항상 객관적이고 담담한 목소리로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놓는 그들을 동경했더랬다.
편견을 버리고 말을 걸면 날 밀어내지 않을것 같은 이해를 구하지도 현실을 부정하지도 숨기려고 하지도 않던 주인공들.
그 모든 주인공들의 원형은 아마도 구스 반 산트의 장편 데뷔작인 <Mala noche>의 월트였던것 같다.
흑백영화에 대해 생각하다보면 어김없이 비슷한 시기에 장편 데뷔작을 내놓은 짐자무쉬와 레오 까락스가 동시에 떠오른다.
밤거리를 배회하는 월트도 밤새 거리를 걷다가 새벽이 되어야 돌아오던 <영원한 휴가>의 앨리도
<소년, 소녀를 만나다> (소년, 소녀를 만나다 리뷰 보러가기) ,에서 어두운 파리를 배회하던 드니 라방도.
그들이 공유하고 있던 그들을 에워싼 고독은 지금 시대에서는 절대 구현해 낼 수 없는 특유의 우울함이었던것 같다.
마치 도화지를 잘라 만든 누군가의 핀홀 카메라를 통해 보여지는듯한 지극히 개인적이고도 사사로운 이야기.
화면속에 자리잡은 최소한의 피사체들과 하나의 인물을 위해 극도로 절제된 빛.
화면을 사이에 두고 주인공과 오롯이 마주앉아 있는듯한 느낌.
달리고 걷고 멈춰있는 다양한 상태에서도 흐트러지지 않는 일관적인 월트의 독백은
화면을 보고 말하던 또 다른 흑백 영화속의 장 폴 벨몽도를 떠오르게 했다.
그러고보니 동숭아트홀에서 정말 괜찮은 영화를 많이 상영했었단 생각이 든다.
개관작인 <천국보다 낯선>부터 두번째 상영작은 레오 까락스의 <소년,소녀를 만나다>였는데
그때 사은품으로 받은 포스터를 꽤나 오랫동안 책상 유리밑에 깔아놨던 기억이 난다.
구스 반 산트의 데뷔작도 동성애라는 소재가 아니었다면 흑백이라는 메리트를 달고 분명 상영될 수 있었을거다.
그것은 아마 80년대 초반 20대초중반을 살았던 당시 90년대 중반 삼사십대들의 향수였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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